【칼럼 · 편집자 주】
이 코너는 편지를 받지 않는다. 편지는 자신을 꾸미지만 설문지는 그러지 못한다. 우리는 열두 문항을 인쇄해 잡지와 함께 부쳤고, 익명을 허용했으며, 요구한 것은 단 하나—거짓말하지 말 것. 첫 회수분 대부분은 중간부터 얼버무리기 시작했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도 머뭇거리지 않은 건 딱 두 통이었다. 아래에 한 글자도 고치지 않고 그대로 싣는다. 첫 번째 설문지의 서명란엔 이름 대신 해당화 한 송이가 그려져 있었다.
【탕 · 그녀】
먼저 자기소개부터. 탕탕, 스물셋, 사무직. 오피스 빌딩 14층 상주, 사원증 사진은 우수사원 게시판에 그대로 붙여도 될 만큼 얌전하다. 171센티, 57킬로, 다리는 길고 허리는 가늘고 가슴은 A컵. 3번 문항, 「몸에서 가장 불만인 곳은」. 처음엔 가슴이라고 썼다가 지웠다—작긴 해도 모양은 서 있고, 무엇보다 감도가 지나치게 좋다. 그렇게 두꺼운 스웨터 너머로도 스치기만 하면 목을 움츠리게 되니까.
계속 답한다. 유두는 갈색이다. 인터넷에서 보는 그런 분홍이 아니고, 아래쪽 색도 짙은 편. 5번 문항, 「신경 쓰이나요」. 나는 썼다. 스물둘까지는 신경 썼고, 스물셋에 정리됐다. 색은 내 것이고, 그걸 미워하는 건 나를 미워하는 것과 같으며, 남이 참견할 일이 아니라고. 6번 문항, 「가장 최근의 자위는 언제였나요」. 손목시계를 보고 썼다. 오늘 오전, 당신들의 설문지를 침대에 펼쳐 둔 채로.
7번 문항, 「침대에서 듣고 싶은 말은」. 이 문항에서 펜이 가장 오래 멈췄다. 「이름」이라고 쓰면 가짜 같고 「달콤한 말」은 더 가짜 같아서, 결국 사실대로 썼다. 음란한 년이라고 불리는 게 좋다고. 낮에는 아무도 나한테 큰소리를 못 낸다. 복사기에 종이가 걸려도 다들 공손하게 나를 찾아온다. 그런데 침대 위에서만은, 그 말이 내리꽂히는 순간 시작도 전에 몸이 반쯤 무너진다. 8번 문항, 「주변 지인에게 성적 환상을 품은 적이 있나요」—없다. 단 일 초도. 내 취향은 아는 사람에게서 자라지 않는다. 다른 곳에서 자란다.
9번 문항, 「해본 일 중 가장 아슬아슬했던 것」. 펜 끝이 한참을 허공에 떠 있었다. 베란다에 나가 담배를 반 대 피우고 돌아와서야 적었다. 작년 여름, 새벽 두 시, 우리 집 복도에 알몸으로 11분간 서 있었다고. 문항 아래엔 자세히 쓰라고 반 페이지가 비어 있었다. 좋아, 그럼 자세히 쓰지.
그날 밤은 더워서 잠이 오지 않았다. 창밖에서 에어컨 실외기가 웅웅 돌아가고, 침대 시트는 발로 차서 뭉쳐 놓은 상태였다. 그 생각이 떠올랐을 땐 이미 현관 앞에 서 있었다. 잠옷 원피스를 머리 위로 벗어 신발장에 걸치고, 팬티는 그 밑에 눌러 놓았다. 문손잡이는 생각보다 차가웠다. 나 자신과 규칙을 정했다—계단실까지만. 창턱을 한 번 만지고, 돌아온다.
골칫거리는 소리 감지 센서등이었다. 우리 동 등은 어찌나 예민한지 기침 한 번에 반 층이 켜진다. 벽에 붙어 맨발로 타일을 밟으며 한 걸음마다 멈췄다. 불은 켜지지 않았다. 복도는 어둡고, 비상구 표지판만 초록으로 빛났다. 방화창으로 스며든 바람이 가슴께를 쓸고 지나갈 때 고개를 숙여 보았다—유두가 아리도록 딱딱하게 곤두서 있었다. 추워서가 아니었다.
【탕 · 그녀】
계단실까지는 정확히 열네 걸음. 세고 있었으니까 안다. 창턱의 먼지가 손끝에 묻었고, 나는 벽에 등을 기대고 섰다. 건물 전체가 곯아떨어져 있는데 알몸인 건 나 혼자였다. 주인 없는 분실물 같았다. 심장 소리가 너무 커서, 어느 층 센서등이 그 소리에 켜질까 봐 진심으로 겁이 났다. 왔던 길로 되돌아가려던 바로 그때, 엘리베이터가 울렸다.
승강로 안에서 먼저 「쿵」 소리가 나더니 케이블이 미끄러지기 시작했고, 숫자가 한 층씩 올라왔다. 태어나서 그렇게 빨리 뛴 적이 없다—열네 걸음이 일곱 걸음으로 줄었고, 무릎을 문틀에 부딪혔고, 열쇠는 현관 매트 밑에 있었고, 손이 떨려서 세 번 만에야 열쇠 구멍에 꽂았다. 문이 등 뒤에서 닫힌 그 일 초 뒤, 엘리베이터가 「띵」 하고 이 층에 섰다. 나는 문짝에 등을 붙인 채 바닥으로 미끄러져 앉았고, 누군가 캐리어를 끌고 지나가는 소리를 들었다. 발소리는 가까워졌다가, 멀어졌다.
뒤늦게 밀려온 공포는 진짜였다. 그런데 호흡이 가라앉고 나니 다른 것이 떠올랐다. 현관 바닥에 알몸으로 주저앉은 내 다리 사이가 번들거릴 만큼 젖어 있었다. 침대에서 몇 번을 뒤척여도 닿지 못한 젖음이었다. 나는 그 자리, 현관 바닥에서 해결했다. 빨랐다. 창피할 만큼 빨랐다. 11번 문항, 「들킬까 봐 무섭나요」. 나는 썼다. 무섭다. 12번 문항, 「그런데 왜 하고 싶나요」. 나는 썼다. 무섭기 때문에.
마지막 칸, 「가장 해보고 싶지만 아직 못 해본 것」. 나는 썼다. 야외. 노출, 그리고 하는 것. 다 쓰고 펜 뚜껑을 눌러 닫고 설문지를 봉투에 넣었다가, 봉하기 전에 다시 뜯어 작은 글씨 한 줄을 보탰다—언젠가 정말로 하게 되면, 한 통 더 부치겠다고.
【칼럼 · 편집자 주】
두 번째 편집자 주. 3주 뒤, 해당화의 두 번째 편지가 도착했다. 두께는 첫 번째의 두 배. 같은 회수분 안에 설문지가 한 통 더 있었는데, 1번부터 11번까지 전부 공란이고 마지막 칸 「가장 잊을 수 없는 한 번」만 빽빽하게 채워져 뒷면까지 이어져 있었다. 서명 자리엔 반쪽짜리 귤 그림. 두 통 모두 그대로 싣는다. 페이지를 넘기기 전에, 문을 잠그시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