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뤄쉐·아내】
새벽 다섯 시 십 분, 기지 배정 단톡방에 메시지 하나가 떴다. “47신, 침실 밤 장면, 여주 노출 대역, 뤄쉐. 일곱 시 스튜디오 입장, 누드 팬티 지참.” 뒤에 빨간 느낌표 하나, 늦지 말라는 뜻이다. 나는 휴대폰을 톈이판 눈앞에 들이댔다. 그는 눈도 안 뜨고 말했다. “알았어, 나 여섯 시 반에 들어가서 조명 세팅해.”
내 이름은 뤄쉐, 스물아홉. 윈치 촬영 단지에서 엑스트라를 육 년 했고, 뒤의 삼 년은 대역 전문이다. 뒷모습 대역, 손 대역, 다리 대역, 노출 대역, 필요한 데는 다 대신한다. 내 얼굴은 카메라에 찍힌 적이 없다. 계약서에 또렷하게 적혀 있다. 대역의 얼굴은 완성본 화면에 나와서는 안 된다. 톈이판은 조명 퍼스트, 서른하나. 우리는 사극 팀에서 만났는데, 그때 그는 나한테 백라이트를 쳐 줬다. 두 달을 쳐 주면서 말 한마디 없었고, 그러다 결혼했고, 삼 년이다.
나는 말이 많다. 이 기지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다. 배정 담당이 내 이름을 올릴 때면 한마디 꼭 덧붙인다. “뤄쉐, 카메라 돌면 입 다물 것.” 나도 다물고 싶다. 근데 머릿속 말들이 수도꼭지 같아서 잠기지가 않고, 밖으로 흘려보낼 수밖에 없다. 톈이판은 한 번도 싫어한 적이 없다. 한 번도 받아 준 적도 없다. 듣고는 있다, 눈은 딴 데를 본다, 조명을 본다.
일곱 시의 스튜디오는 입김이 하얗게 보일 만큼 추웠다. 47신 세트는 침실 하나, 베이지색 시트, 침대 머리맡 벽등 두 개는 가짜고 진짜 빛은 톈이판 손에 있다. 그는 사다리 위에서 1.2K 라이트 하나를 조절하고 있고, 옆에는 커다란 디퓨저 한 장, 디퓨저 아래가 내가 누울 그 침대다.
“뤄쉐, 와서 한번 맞춰 보자.” 인티머시 코디네이터 메이 선생님이 손짓했다. 메이 선생님은 마흔 넘었고, 이 팀에서 유일하게 대역한테 “수고했어요”라고 말해 주는 사람이다. 살색 누드 패치 한 상자랑 누드 팬티 하나를 내 손에 쥐여 주고, “늘 하던 대로. 끝까지 패치 안 떼고, 앵글 트릭, 실제 접촉은 일절 없음. 지 선생님 쪽도 입었어. 불편하면 언제든 손 들어. 손 들면 내가 스톱 걸 거고, 아무도 뭐라 못 해.”
“알아요 알아요.” 내가 말했다. “삼 년 했잖아요 메이 선생님, 지난 팀에서 욕조 베드신 대역을 한 적 있는데요, 물이 차가워서, 그 남자 배우가 물에 들어가자마자 덜덜 떨더라고요, 욕조가 통째로 흔들릴 정도로 떠는데, 감독이 왜 떠냐 그러니까 춥대요, 감독이 추워도 딱딱하게 하라고, 하하, 연기를 딱딱하게 하라는 거지 그게 아니라……”
“뤄쉐.” “네.” “입 다물어.” “넵.”
【지베이·단남】
대역이 말이 많다는 건 아침 일곱 시 이십 분에 이미 알았다. 분장실에서 대사를 맞추고 있는데, 천 커튼 한 장 너머로 그녀가 메이 선생님한테 욕조 얘기를 하는 게 들렸다. 하다가 잘리자 아주 깔끔하게 “넵” 하더니 진짜로 멈췄다. 삼 초 뒤에 다시 시작했다. 이번엔 디퓨저 얘기였다.
내 이름은 지베이, 서른여덟, 연기 십구 년째. 해 본 배역을 다 모으면 마을 하나는 채우는데, 이장은 하나도 없다. 이 작품에서 나는 남주고, 제작자는 “너한테 기회를 주는 거야”라고 했다. 이런 기회 나도 안다. 삼류 배우의 기회란 침대 하나다. 여주가 직접 눕기 싫어하는 침대.
청페이가 여주다. 스물여섯, 톱급 신예, 계약서에 노출 장면은 일절 안 찍는다고 적혀 있다. 그래서 47신, 침대 위에 누운 건 그녀의 얼굴과 다른 사람의 몸이다. 샷은 잘게 쪼개진다. 청페이의 얼굴, 대역의 어깨, 청페이의 손, 대역의 등. 이어 붙이면 한 사람이 된다.
스튜디오에 들어갔을 때 내가 먼저 본 건 빛이었다, 그녀가 아니라. 조명 퍼스트가 사다리 위에 있었다. 마르고 키 큰 남자, 폭탄이라도 해체하는 것처럼 집중하고 있었다. 라이트를 아주 낮게 눌러서 빛이 침대 왼쪽에서 비스듬히 들어와 시트 위쪽 절반을 비추고, 침대 오른쪽 절반은 전부 그늘이었다. 메이 선생님이 말했다. 대역의 얼굴은 내내 저 그늘 안에 있어야 한다고.
“지 선생님, 안녕하세요.” 그녀가 침대 저쪽에서 일어섰다. 몸에는 살색 누드 패치와 그 누드 팬티뿐, 촬영장 군용 코트를 걸치고 있었다.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손이 아주 건조했다. “뤄쉐예요, 기지에서 보냈어요. 오늘 이 신의 다리, 허리, 등, 엉덩이는 저고, 얼굴은 제가 아니라 청 선생님이에요. 말 많다고 싫어하지 마세요, 싫어해도 소용없어요, 저를 바꾸려면 기지 절차를 밟아야 하거든요, 바오 감독님이 지난달에 대역 하나 바꾸려다가 절차에만 삼 주 걸렸어요.”
“바꿀 생각 없어.” “그럼 다행이고요. 말이 많은 건 긴장해서고, 긴장한 건 추워서지, 선생님 때문이 아니에요.” “나 때문이라고 생각한 적도 없어.” “그럼 다행이고요.”
모니터 뒤에서 바오 감독님이 소리쳤다. “대역 말하지 마. 지베이, 위치.”
【톈이판·남편】
사다리 위에서 내가 보는 건 빛 한 덩어리와 그늘 한 덩어리다. 빛 안에는 시트의 주름, 청페이의 얼굴, 청페이의 손. 그늘 안에는 뤄쉐.
메이 선생님의 요구는 똑똑히 기억한다. 대역의 얼굴에 빛이 닿으면 안 된다. 그래서 나는 검정 플래그를 라이트 오른쪽에 바짝 붙여 딱딱한 경계선 하나를 잘라냈다. 정확히 베개 자리에 떨어지게. 그녀의 얼굴이 베개 위에 있기만 하면 거긴 검다. 어깨, 허리, 다리는 빛 안에 있고, 기름이라도 바른 것처럼 번들거린다.
“이판, 조금 더 눌러.” 바오 감독님이 말했다. 나는 플래그를 손가락 두 개만큼 더 내렸다. 그녀의 이마에서 빛이 조금 물러났다.
눕기 전에 그녀가 이쪽을 한 번 봤다. 나를 본 건지는 모르겠다. 사다리는 높고 라이트는 눈부시고, 저쪽에서 보면 하얀 덩어리 하나일 거다. 나는 보온병을 사다리 밑에 내려놓았다. 안에 든 건 그녀의 구기자 물. 그녀가 깜빡해서 아침에 내가 챙겨 왔다.
“각 파트 준비.” 스크립터 샤오장이 슬레이트를 들고 카메라 앞에 섰다. “47신, 샷 1, 테이크 1.” 슬레이트가 딱 닫혔다. “액션.”
【뤄쉐·아내】
그가 위로 덮쳐 왔을 때 나는 디퓨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 눕기만 하면 머리가 저 혼자 켜진다. 저 천 좀 누레졌네, 바꿀 때 됐네, 톈이판이 지난 팀에서도 바꾼다고 했는데, 안 바꿨네, 라이트를 켜니까 역시 저 천이네. 그러다 지베이의 가슴이 내 패치에 닿았다. 살색 실리콘 두 겹을 사이에 두고, 나는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다. 느껴지는 건 그의 무게뿐이었다.
앵글 트릭. 그의 골반은 내 사타구니 위 손가락 세 개 자리에 얹혀 있고, 누드 팬티가 누드 팬티를 사이에 두고 있다. 메이 선생님이 카메라 뒤에서 작게 “지 선생님 조금만 더 위로” 하자 그가 조금 올라갔다. 내 얼굴은 오른쪽으로 돌아가 있고, 오른쪽은 검다. 입은 베개에 붙어 있고, 베개에서는 세제 냄새가 났다.
“컷.” 바오 감독님이 말했다. 그는 곧바로 멈췄고, 무게가 단숨에 빠져나갔다. “대역, 허리 더 내려. 다시.” “테이크 2.” 슬레이트가 딱 닫혔다. “액션.” 그가 다시 덮쳐 왔다.
세 번째 테이크부터 나는 그의 숨을 셌다. 숨이 아주 고르다. 배우의 숨, 코로 들이쉬고 입으로 내쉬고, 한 번 한 번 길이까지 다 조절돼 있다. 네 번째 테이크에 그의 몸에서 헤어 왁스 냄새가 났다. 아주 옅은, 분장실의 그 냄새. 다섯 번째 테이크, 그가 움직일 때 그가 딱딱해진 걸 느꼈다. 누드 팬티 두 겹 너머로 딱딱한 것 하나가 내 사타구니 위쪽 자리에 닿아서, 안 움직이고, 그냥 거기 있었다. 그는 아래로 내려오지 않았다. 한 번도.
“컷.” 그는 곧바로 물러났다. 내 몸에서 내려가 침대 가장자리에 앉더니 카메라를 등진 채 고개를 숙이고 한마디 했다. “미안합니다.” 아주 작은 소리로, 나한테만 들리게. “촬영인데요 뭐.” 내가 말했다. 그는 돌아보지 않았다.
더 많이 말하고 싶었다. 이런 건 아무것도 아니라고, 지난 팀 욕조 그 사람도 딱딱해졌다고, 나 삼 년 했는데 뭘 못 봤겠냐고. 근데 안 했다. 문득 깨달았다. 말이 없어졌다. 입은 베개에 붙어 있고, 세제 냄새를 맡으면서, 머릿속이 한 이 초쯤 비었다.
“테이크 6.” 샤오장이 말했다. “액션.”
【지베이·단남】
여덟 번째 테이크에 오케이가 났다. 바오 감독님이 모니터 뒤에서 “오케이, 보험으로 한 번 더” 해서 아홉 번째 테이크를 찍었다. 침대에서 내려올 때 다리가 풀려 있었다. 피곤해서가 아니다. 한 시간 반을 한 사람 위에 올라타 있었는데, 아무 일도 안 일어났고, 또 모든 일이 일어났다.
그녀는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군용 코트를 입으면서 떠들고 있었다. “메이 선생님, 다섯 번째 테이크에 저 움직였어요? 허리가 위로 한 번 들린 것 같은데, 들렸어요? 안 들렸죠? 바오 감독님이 말 없었으니까, 감독님이 말 없으면 안 들린 거죠……” 메이 선생님이 “안 들렸어, 아주 좋았어” 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고 또 “일곱 번째 테이크에 지 선생님 손이 제 등에서 한 번 멈췄는데, 그 위치 맞아요? 청 선생님 손 대역도 맞춰 봐야 하는 거 아니에요?” 메이 선생님이 “맞췄어” 했다.
나는 모니터 옆에 서서 플레이백을 봤다. 화면에는 청페이의 얼굴, 그다음 허리 하나, 등 하나, 빛 속에서 오르내리는 살갗 한 조각, 얼굴은 전부 검은 데 있다. 샤오장이 옆에서 스크립트 시트를 적고 있었다. “여주 대역: 뤄쉐.” 완성본에서 이 이름은 나오지 않는다.
“지 선생님.” 그녀가 걸어왔다. 손에는 그 보온병, 뚜껑을 돌려 한 모금 마시고, “아까 미안하다고 하셨죠, 안 하셔도 돼요. 이 일 삼 년 했는데, 딱딱해진 남자 배우 여섯 명 봤어요, 선생님이 일곱 번째예요. 앞의 여섯은 아무도 미안하다는 말 안 했고, 하나는 내 문제라고까지 했어요. 미안하다고 한 사람은 선생님이 처음이에요.”
“너 진짜 말 많다.” “알아요.” 그녀는 한 모금 더 마셨다. “몇 시에 끝나세요?” “바오 감독님이 오늘 내 분량 끝날 때까지라던데. 열 시쯤.” “그럼 열 시 이후엔 어디 계세요?” “캠핑카.”
나는 그녀를 봤다. 스튜디오 천장 작업등 아래에서, 그녀의 얼굴이 처음으로 온전히 환했다. 눈썹이 옅고, 콧대에 작은 점 하나. 하루를 찍고 나서야 나는 이 얼굴을 처음 봤다.
“그건 왜 물어?”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녀가 말했다. “그냥 알고 싶어서요. 열 시 이후에, 어디 계시는지.”
【톈이판·남편】
열 시 오 분, 바오 감독님이 철수를 알렸다. 나는 조명을 걷기 시작했다. 1.2K 라이트는 이십 분 식혀야 케이스에 넣을 수 있다. 디퓨저는 말고, 플래그는 자루에 넣고, 케이블은 감는다. 조명팀 네 명, 다 걷으려면 최소 두 시간.
뤄쉐가 스튜디오 문가에 잠깐 서 있었다. 자기 옷으로 갈아입었다. 회색 후드티, 청바지, 머리는 묶었다. 이쪽으로 오지도 않고, 가지도 않았다. 사다리 위에서 그녀를 한 번 봤다. 그녀는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눈을 다시 라이트로 돌렸다. 라이트는 아직 뜨거웠다.
“나 먼저 들어갈게.” 그녀가 문가에서 말했다. “응.” “네 구기자 물 내가 다 마셨어.” “응.” “있잖아 이판, 오늘 플래그 너무 낮게 눌렀어. 세 번째 테이크에 내 이마까지 검었어.” “바오 감독님이 누르라고 해서.” “알아.” 그녀가 말했다. “그냥 한마디 한 거야.”
그녀는 갔다. 나는 라이트를 껐다. 스튜디오가 단숨에 깜깜해지고, 문가에 초록색 비상구 등 하나만 남았다. 나는 라이트의 디퓨저 안으로 손을 넣었다. 천 안쪽에 아직 온기가 조금 남아 있었다. 그녀가 누워 있던 쪽이다.
【뤄쉐·아내】
안 들어갔다. 조명차를 돌아서, 소품차를 돌아서, 주차장 끝에 세워진 엑스트라 버스 두 줄을 돌았다. 주연 캠핑카는 제일 안쪽에 서 있다. 흰색, 커튼은 쳐져 있고, 커튼 틈으로 빛 한 줄기.
내 손에 물건 하나가 있었다. 나오면서 샤오장한테 빌린 거다. 기념으로 사진 한 장 찍겠다고 했더니, 샤오장은 내일 아침 일곱 시 전에 돌려 달라고 했다. 슬레이트 하나, 검정색, 흰 펜으로 “47신”이라고 적혀 있다. 안 지웠다.
나는 캠핑카 문 앞에 섰다. 발밑은 자갈이고, 밟으면 소리가 난다. 톈이판이 스튜디오에서 조명을 걷고 있다는 걸 안다, 두 시간. 조명 걷을 때 그는 휴대폰을 안 보고, 사람을 안 보고, 라이트만 본다. 그는 나한테 잘한다. 삼 년 동안, 구기자 물을 사 주고, 약을 챙겨 주고, 의료보험을 내 줬다. 그는 한 번도 나를 안 본다. 그가 보는 건 빛이고, 내 얼굴은 언제나 빛의 반대편에 있다.
손을 들어 문을 두드렸다. 두 번. 문이 열렸고, 지베이가 문 안에 서 있었다. 몸에는 아직 그 의상 셔츠, 깃이 열려 있다. 그는 나를 보고, 다시 내 손에 든 슬레이트를 봤다.
“한 테이크 추가요.” 나는 슬레이트를 그의 눈앞에 들어 올렸다. “47신, 내 거. 청페이 거 아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