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층으로 오르는 엘리베이터에는 버튼이 없었다. 황동 키패드 하나와 차게 식은 샴페인 냄새뿐. 한 시간 전, 낯선 이가 아이라이너로 손목에 적어 준 여섯 자리를 아드리안은 눌러 넣었다. 아래층에서는 론칭 파티가 굉음을 내며 끓고 있었다. 문이 금고처럼 맞물려 닫히고, 도시가 발밑으로 떨어져 내렸다.
스물아홉. 돌아서기에 충분할 만큼 멀쩡한 정신이었다. 그리고 그는 그 아이라이너 글씨가 채 마르기도 전에, 오늘 밤이 어떻게 끝날지 이미 정해 둔 터였다.
펜트하우스는 검은 대리석과 빗줄기가 흘러내리는 통유리로 열려 있었다. 40층 아래에서 도시는 금빛으로 타오르며 제 일에만 몰두했다. 방 한복판에는 은발의 여자가 서 있었다. 한밤의 빛깔 턱시도를 입고, 시선 한 번 주지 않은 채 카드 한 벌을 섞으면서.
“휴대폰.” 여자가 말하며 구리 그릇을 그에게 기울였다. 그 안에는 휴대폰 네 대가 화면을 엎은 채 잠들어 있었다. “여기 두고 가는 거예요. 깨우는 건 떠날 때만.”
“안 떠나면요?”
“그럼 아침까지 재우는 거죠.” 그녀의 미소가 그 문장에 가격표를 붙였다. “나는 ‘하우스’예요. 이름이 아니라. 오늘 밤 여기서는 아무도 이름을 갖지 않아요. 규칙 하나.”
아드리안은 휴대폰을 그릇에 떨어뜨렸다. 짤그랑, 그 소리가 결심처럼 들렸다.
손님 넷이 잔을 든 채 방의 네 귀퉁이를 지키고 있었다. 벨벳 재킷의 남자는 레코드 선반을 심문하는 중이었고, 다이아몬드 귀걸이의 여자는 아무것도 아닌 것에 웃고 있었다. 그리고 창가에는—
창가에는 검은 드레스의 키 큰 여자가 서서, 외과의가 상처를 들여다보듯 비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뒤에는 초록 실크를 입은 여자가 힐을 벗고 앉아 무릎 위에 스틸 플라스크를 올려 두고 있었다. 콧등을 가로지르는 주근깨는, 꿍꿍이가 있는 별자리 같았다.
초록 실크가 그를 향해 플라스크를 들어 보였다. “왔네요.” 그녀가 말했다. “안 올 거라고 하우스랑 백 달러 걸었는데.”
손목의 아이라이너 숫자가 근질거렸다. 그러니까 그녀였다. 아래층에서의 11분, 짓궂도록 근사한 필체 한 줄, 그리고 사라짐. “당신이 누군지 말해 주지 않았잖아요.” 그가 말했다.
“규칙 하나.” 그녀가 한 모금 마셨다. “열 시 전에는 절대 규칙을 안 어겨요.” 시각은 열한 시를 넘긴 지 오래였다. 계산은 그의 몫으로 남겨 두었다.
“카드.” 하우스가 선언하며 대리석 바 위로 카드를 부채꼴로 펼쳤다. “해 뜰 때까지, 당신은 당신이 뽑은 패입니다. 뽑으세요.”
벨벳 재킷은 클럽 잭을 뽑고 흡족한 표정이 되었다. 다이아몬드 귀걸이는 다이아몬드 9를 뽑고 그렇지 못했다. 키 큰 여자는 두 손가락으로 대리석에서 제 카드를 떼어 냈다. 스페이드 퀸. 그 카드는 드레스가 그러하듯 그녀에게 어울렸다. 칼집에 칼날이 어울리듯.
초록 실크는 격식 없이 제 카드를 뒤집었다. 하트 퀸. “당연하지.” 그녀가 말했다.
아드리안이 마지막으로 뽑았다. 하트 킹. 방 전체가 알아차렸다. 스페이드 퀸이 창가에서 돌아섰고, 그녀의 시선이 하트 퀸의 시선과 엇갈렸다. 한 테이블 위에 나란히 놓인 두 자루의 칼처럼.
“퀸이 둘.” 하우스가 남은 카드를 주머니에 밀어 넣으며 말했다. “킹이 하나. 이 덱은 저 나름의 견해가 있군요.”
그녀는 남은 규칙들을 잠자리 동화처럼 나눠 주었다. “규칙 둘, 휴대폰—끝났고. 규칙 셋, 자정 전에는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는다. 단추 하나, 지퍼 하나도. 허기를 키우세요. 자정이 값을 치를 테니. 규칙 넷, 만지기 전에 물을 것. 매번, 모든 손길마다. 오늘 밤 묻는 건 세금이 아니에요. 묻는 것이 곧 게임이지. 규칙 다섯, 엘리베이터는 밤새 움직이고 아무것도 심판하지 않는다. 규칙 여섯, 40층 위에서 일어난 일은 40층 위에 남는다.”
“자정에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데요?” 잭이 물었다.
“불이 꺼져요.” 하우스가 말했다. “그다음부터는 전부, 자원자만.”
그다음 한 시간은 칵테일드레스를 걸친 전희였다. 스페이드 퀸이 방을 가로질러 와 그의 숨결이 닿는 거리 안에 멈추더니, 그의 손목을 내려다보았다. “해도 될까요?” 그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엄지로 아이라이너 암호를 한 자리씩 지워 나갔다. 손끝의 살이 단단했다. 굳은살. 왼손에만.
“첼로예요.” 그녀가 말했다. 그 계산마저 들켜 버렸다. “20년째. 손이란 건 뭘 연습해 왔는지에 관해선 정직하거든요.”
하트 퀸이 반대편에 도착해 플라스크를 건넸다. “섬에서 빚은 싱글몰트. 내가 만들어요. 나는 서른하나, 위스키는 열한 살. 여자와 그녀의 술 사이엔 그게 딱 맞는 나이 차거든.” 피트 향이 빗속의 모닥불처럼 혀를 때렸다.
“두 분은 아는 사이예요?” 그가 물었다.
두 퀸이 이 밤보다 오래된 눈빛을 주고받았다. “우린 이거, 해 본 적 있어요.” 스페이드가 말했다. “두 번.” 하트가 말했다. “킹들은 오래 못 가요. 끝나면 어슬렁어슬렁 나가서는 회계사랑 결혼하죠.”
“내 이름을 말해 주고 싶—” 하트가 입을 떼자, 스페이드가 굳은살 박인 두 손가락을 그 입술 위에 가로놓았다. 허락은 구하지 않았다. 스스로 치르기로 한 벌금이었다. “자정 이후에.” 스페이드가 말했다. “이름은 추가 요금이야.”
바 위쪽에서는 청동 선박 시계가 모두가 신경 쓰는 유일한 시각을 향해 째깍거렸다. 11시 58분. 잭과 9는 저쪽 소파와 서로를 이미 차지한 뒤였다. 하우스는 스위치 패널 앞에 서 있었다. 활이 들리는 것을 지켜보는 지휘자처럼.
“엘리베이터, 마지막 안내입니다.” 하우스가 말했다.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비가 유리에 실밥을 꿰맸다. 아드리안의 맥박이 시계 소리보다 크게 뛰었다.
“자정.” 하우스가 말하고, 불을 껐다.
완전한 어둠은 아니었다. 도시가 거부했으니까. 금빛이 거리에서 피어올라 어깨 위에, 윤곽선에, 들어 올린 플라스크의 테두리에 내려앉았다. 가까운 어딘가에서 실크가 움직였다. 유리창의 잔광 속에서 두 손이 그의 손을 찾아냈다. 하나는 굳은살 박인 손, 하나는 위스키처럼 따뜻한 손. 그리고 입술이 그의 귀를 스쳤다.
“규칙 넷이에요, 킹.” 그녀가 속삭였다. “우리에게, 물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