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장실의 카펫

1화1장 샤오 회장이 말했다, 꿇고서 올려

밤안개 · 2325자 · 한국어

3월 12일 목요일, 아침 8시 50분. 치란 그룹 28층, 회장실 바깥 사무실. 나는 샤오 회장의 오늘 일정표를 한 부 뽑았다. A4, 명조체 12포인트, 책상 왼쪽 두 번째 칸에 놓았다. 지난 4년 동안 늘 그랬던 것처럼.

내 이름은 정유, 서른한 살, 회장 비서, 월급 1만 8천5백 위안. 회사 규정상 여비서는 정장 스커트에 스타킹을 신어야 한다. 겨울도 예외는 없다. 남편 루차오는 서른네 살, 작년에 대기업을 그만두고 창업했다. 스마트 무인 보관함 사업, 회사 이름은 '차오구이 테크'.

차오구이 테크의 창업 자금 300만 위안은 치란 산하의 치란 벤처스에서 빌린 것이었다. 대출 계약서 7페이지, 연대보증인 칸에 적힌 건 내 이름이었다. 루차오는 형식적인 절차일 뿐이라고, 샤오 회장이 고개를 끄덕여 줘서 승인된 거라고, 사인만 하면 된다고 했다. 나는 사인했다.

3월 10일, 대출 만기. 루차오의 계좌에 남은 돈은 4만 1천 위안, 보관함은 둥관 창고에 120대가 쌓여 있었다. 아무도 원하지 않았다.

어젯밤 그는 소파에 앉아 휴대폰 화면을 내게 보여줬다. 치란 벤처스의 독촉장, 빨간 도장, 기한 15일. “유유, 네가 샤오 회장한테 말 좀 해 봐. 좀 미뤄 달라고.” “난 그 사람 비서지, 딸이 아니야.” “그래도 넌 보증인이잖아.” 그는 그 말을 하고는 입을 다물었다.

9시 정각, 샤오 회장이 출근했다. 샤오치밍, 쉰두 살, 치란 그룹 회장, 178센티, 희끗한 머리를 뒤로 넘기고, 매일 흰 셔츠 한 장, 넥타이는 절대 매지 않는다. 말이 느리다. 한 글자 한 글자 끊어서. 4년을 모셨지만 그가 큰 소리를 내는 걸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다.

“정유, 들어와.” 내선이 울렸다. 나는 일정표와 그가 요청한 인수합병 초안을 들고 들어가 책상 앞에 섰다.

“네 남편 계약서, 봤다.” 그는 고개를 들지 않고 서명을 하면서 말했다. “300만, 만기 이틀 지났어. 치란 벤처스 쪽에서 나한테 보고 올렸고, 법무팀으로 넘어간다.”

“회장님, 석 달만 미뤄 주실 수 없을까요. 보관함 쪽에서 편의점 체인이랑 협상 중인데, 성사되면……” “안 돼.” 그가 고개를 들었다. “지난주에 그 편의점 사장한테 물어봤어. 거긴 펑차오 보관함 쓴다.”

내 손에 든 A4 용지가 살짝 휘었다.

“법무 절차 밟고, 소송 걸면, 넌 보증인이야. 너희 집 차오양에 있는 그 아파트, 260만, 경매 넘기면 180만 나와. 남은 120만은 네 월급에서 깐다. 6년 동안.” 그는 펜 뚜껑을 닫았다. “내 말이 맞나?” “맞습니다.”

“방법이 하나 더 있어.” 그는 만년필을 책상 위에 놓았다. 몽블랑, 검은 레진, 뚜껑 꼭대기에 흰 별 하나. “이 300만, 내가 개인적으로 넘겨받는다. 이자 없고, 독촉 없어. 인수 건 끝나면 내가 사인 한 번 하고, 그걸로 청산.”

“조건은요?” “말 잘 듣는 거.”

그 말을 하고 그는 인수 초안을 보러 갔다. 세 장을 넘기고 연필로 동그라미 하나를 쳤다. “12조, 숫자 틀렸어. 8.7을 7.8로.” “네.”

“정유.” “네.” “무릎 꿇어.”

잘못 들은 줄 알았다. 그는 반복하지 않았고, 나를 보지도 않았다. 연필이 13조에 또 동그라미를 쳤다. 사무실에는 중앙 냉난방 소리와 그가 종이 넘기는 소리뿐이었다.

나는 무릎을 꿇었다. 양모 카펫, 진회색, 뉴질랜드산, 작년에 바꾼 것, 12만 위안. 무릎이 닿자 스타킹과 카펫 사이에 정전기가 살짝 일어 찌릿했다.

“일정표 올려.” 나는 A4 용지를 들어 책상 모서리 아래에서 위로 내밀었다. 그가 손을 뻗어 받았다. 10초 보더니, “오후 3시 회의 4시로 바꿔. 공지 보내.” “네, 알겠습니다.”

“일어나.” 나는 일어났다. 무릎에 자국 두 줄, 스타킹은 15데니어라 비쳤다. 그가 한 번 봤다. 딱 한 번. “내일은 20데니어로 바꿔. 검은색.” “네.”

바깥 사무실로 돌아와 앉았다. 두 다리를 꽉 붙였다. 딩톡 알림이 떴다. 루차오: “물어봤어?” 나는 “물어봤어” 두 글자를 쳤다가 지우고, 다시 “저녁에 얘기해”라고 썼다.

오전 내내 샤오 회장에게 차를 두 번 다시 따랐고, 인수 초안의 숫자 여섯 개를 고쳤고, 회의 변경 공지를 보냈다. 들어갈 때마다 그는 나를 꿇리지 않았다.

낮 12시 반, 그는 아래층 클럽으로 식사하러 갔다. 가기 전에 내 책상 옆에 서서 내 다리를 한 번 봤다. “스타킹 올 나갔어. 왼쪽 종아리.” 내려다보니 정말 올이 나가 있었다. “갈아 신어.” 그는 갔다.

서랍에서 여분을 꺼내 화장실에 가서 갈아 신었다. 벗은 스타킹은 종아리 한가운데가 나가 있었다. 언제 나갔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무릎 꿇을 때였을지도.

갈아 신는 중에 휴대폰이 울렸다. 공상은행 문자: 고객님의 끝자리 6620 계좌에서 03월 12일 12:41 11,000.00위안이 출금되었습니다. 주택담보대출 자동이체. 계좌 잔액 6,412.35위안. 나는 그 잔액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스타킹을 위로 끌어올려 펴고 돌아가 앉았다.

오후 2시, 치란 벤처스의 팡 사장이 전화를 걸어 회장님이 차오구이 건을 어떻게 처리하실 건지 물었다. 회장님은 회의 중이라고 했다. 그가 말했다. “정 비서, 당신도 보증인이잖아. 알아서 잘 생각하시겠지.” 끊었다.

오후 4시, 회의가 끝났다. 그는 나를 불러 서류를 정리하게 했다. “정유, 결정했나?” “결정했습니다.” “그럼 내일부터 아침 7시 50분, 먼저 안쪽 방으로 와서 문 두 번 두드려.”

안쪽 방은 회장실 뒤에 있는 휴게실이다. 침대 하나, 옷장 하나, 샤워실 하나. 출장 다녀와서 시차 적응할 때 쓰는 곳. 나는 거기를 청소하러 들어간 적이 있다. 200번도 넘게.

“안쪽 방에 들어가서 뭘 하는데요?” “출석.” 그는 천천히 말했다. “넌 담보물이야. 담보물은 매일 한 번씩 점검해야 해.”

“점검은 얼마나 걸리는데요?” “10분. 나머지는 네 태도 보고.” “뭘 점검하는데요?”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선 채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가 몽블랑을 집어 들었다. 펜촉을 아래로 향하게 하고 책상 너머로 뻗어, 뚜껑 끝을 내 턱 밑에 대고 위로 들어 올렸다. 내 얼굴이 들렸다. 차가웠다. 레진이었다.

“무섭나?” “무섭습니다.” “뭐가?” “루차오가 알까 봐요.” “알게 될 거야.” 그는 펜을 거두었다. “근데 아무 말도 안 할 거다.”

그의 말이 맞았다. 저녁 7시에 집에 오니 루차오가 주방에서 면을 삶고 있었다. 두 그릇, 계란프라이 하나. 나는 샤오 회장이 한 말을 그대로 전했다. 무릎 꿇은 부분만 빼고, 안쪽 방 부분만 빼고.

“개인적으로 넘겨받는다고? 이자 없이?” 그는 계란프라이를 내 그릇에 얹어 줬다. “그럼 너무 잘됐네. 유유, 샤오 회장이 역시 널 아끼는 거야.” “말 잘 들으라고 했어.” “넌 원래 말 잘 듣잖아, 4년이나 일했는데.” 그는 면을 한 입 빨아들였다. “내일 둥관 가서 보관함 좀 처분할 수 있나 볼게.”

나는 면을 반 그릇 먹었다. 그가 설거지를 하고, 끝나고 서재로 가서 전화를 걸어 둥관 창고 주인과 보관료를 깎았다. 나는 침실에서 내일 입을 옷을 꺼냈다. 남색 정장 스커트, 흰 블라우스, 검은 스타킹 20데니어. 새것, 포장도 안 뜯은.

10시 반에 루차오가 침대에 올라와 뒤에서 나를 한 번 안았다. 손이 내 허리에 얹혔다. “유유, 이 고비만 넘기면 싼야에 데려갈게.” “응.” 그의 손은 아래로 내려가지 않았고, 2분 뒤에 코를 골았다.

그가 코를 골기 시작한 뒤 나는 일어나 현관 신발장을 열었다. 가장 높은 건 9센티 지미추, 검은 뾰족코, 결혼하던 해에 그가 사 준 것. 두 번 신었다. 한 번은 결혼식, 한 번은 그의 회사 개업식. 꺼내서 닦고 현관 앞에 놓았다.

눈을 뜬 채 11시 40분까지 누워 있었다. 손을 잠옷 바지 안에 넣었다. 젖어 있었다. 몇 시부터 젖었는지 알 수 없었다. 면 삶을 때였을 수도, 그가 “넌 원래 말 잘 듣잖아”라고 했을 때였을 수도.

손가락 두 개로. 생각한 건 그 펜이 내 턱을 들어 올리던 그 순간, 차가웠던 것. 3분도 안 돼 다리가 뻣뻣하게 펴지고 이로 베개 모서리를 물었다. 루차오가 몸을 뒤척였지만 깨지 않았다.

일어나 화장실에 가서 팬티를 갈아입었다. 벗은 건 빨래 바구니 맨 밑에 쑤셔 넣었다. 돌아오는 길에 휴대폰이 한 번 밝아지는 게 보였다. 샤오 회장의 위챗, 11시 52분.

“내일 좀 더 높은 구두 신고 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