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화는 탁자에 한 번 맑게 울리고는 잠잠해졌다. 백 년 동안 무수한 엄지에 닳아 얇아진 은이었고,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나라의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 그는 그 문장을 알았다. 그 나라의 끝을 붉은 잉크로 그린 것이 바로 그 자신이었다. 마지막 국경이 풀려 버린 그해에.
“내가 끝나는 곳을 그려 주세요.” 소녀가 말했다.
가게 창으로 들어온 오후의 빛이 길처럼 마룻바닥을 가로지르고 있었고, 소녀는 그 빛의 길 위에 서 있었다. 바깥바람에 손마디가 터서 벌겋게 갈라져 있었다. 그녀는 두 손을 허리께에 모아 쥐고 있었다. 내려놓기가 두려운 것을 안고 있는 사람의 자세로.
그는 은화에 손을 대지 않았다. 사방의 벽에는 나방 표본처럼 그의 작업들이 핀으로 꽂혀 있었다. 소금길의 끝 — 사십 리그의 돌길이 모래 언덕 하나 아래서 무릎을 꿇은 자리. 어느 결혼의 끝 — 한 골짜기를 나누어 흐르다가 더는 나누지 않게 된 두 줄기 강으로 그려진 것. 어느 전쟁의 끝 — 그것은 한 뙈기 들판이었고, 풀밭으로 되돌아가는 중이었다.
“나는 사물의 끝을 그리네.” 그가 말했다. “길. 전쟁. 종이가 좋으면 약속도. 사람은 그리지 않아.”
“부탁하러 오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소녀가 말했다.
“오지. 술꾼도 오고, 아내 잃은 남자도 오고. 어느 왕은 아직 살아서 돌고 있는 금화를 궤짝째 보내왔지만, 그대로 돌려보냈다.” 그는 손가락 하나로 은화를 뒤집었다. 죽은 화폐. 올바른 보수. 그것이 올바르다는 사실이 그는 싫었다.
“내가 거절하는 건, 그려진 끝에는 다다를 수 있게 되기 때문이야.” 그가 말했다. “그려지지 않은 동안은, 찾아지지도 않지. 그게 내 장사의 유일한 자비다. 네가 지금 나더러 네게서 무엇을 앗아 가라 하는 건지 알고는 있느냐?”
“당신보다는 잘 알아요.” 소녀가 말했다. “그리세요.”
모든 지도는 가늠할 정점 하나를 원한다. 끝에게 그 정점은 시작이다. “어디서 시작했지?” 그가 물었다. “이 도시에서요.” 소녀가 말했다. “겨울에. 아무도 해치지 않은 작은 불 속에서.”
그는 뒷말을 기다렸다. 소녀는 아무것도 보태지 않았다. 열아홉으로 보이는 아이가 말한 겨울은 육십 년 전에 있었고, 그런데도 그는 받아 적었다. 펜이 그것을 원했으므로.
그는 새 종이를 핀으로 고정하고 잉크들을 늘어놓았다. 헐린 성문의 녹빛. 말라붙은 내해의 잿빛. 그리고 세밀한 작업을 위해 아껴 두는 그을음의 검정 — 그가 결코 입에 올리지 않는 어느 불에서 갈아낸 것. 손이 저 혼자 그 검정으로 갔다.
이것이 스승에게서 물려받은 그대로의 기예였다. 끝의 지도사는 선을 지어내지 않는다. 선에 끌려갈 뿐이다. 펜은 갈매기가 물 위로 나아가듯 종이 위로 나아갔고, 그 아래로 해안선이 모여들었다. 만 하나, 곶 하나, 광장 위로 늘어선 경사진 지붕들.
그는 그 광장을 알았다. 세 획으로 분수를 앉히고는 그 물소리를 알아보았다. 평생 아침마다 제 창 밑에서 들어온 소리였다. 그는 좁은 골목을 그렸다. 골목을 따라 늘어선 차양을 그리고, 닳은 놋쇠 걸쇠가 달린 문을 그리고, 발길에 가운데가 움푹 팬 섬돌을 그렸다.
그의 문. 그의 섬돌. 펜은 문지방 위에서 멈추었고, 그 너머로는 터럭만큼도 끌려가지 않았다.
소녀는 종이를 한 번도 보지 않았다. 그 내내 그의 얼굴만 지켜보고 있었다. 자기가 쓴 편지를 뜯는 남자를 지켜보는 그런 눈으로.
“보이시죠.” 소녀가 말했다. 보였다. 그녀가 끝나는 곳의 지도는, 그 자신의 집 대문으로 가는 지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