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징·그녀】
리스본의 호텔 헬스장은 아침 여섯 시에 문을 연다. 나는 다섯 시 반에 깼다. 시차가 일곱 시간이었다. 누운 채로 업무 메일함을 0까지 비우고는, 아예 스포츠 브라로 갈아입고 내려갔다.
내 이름은 바이징. 서른여덟, 싱글, 독일 기업의 화둥 지역 매니저다. 일 년에 백 일 넘게 호텔에서 잔다. 메리어트 카드는 다이아몬드까지 쌓였고, 프런트에서 내 이름을 부를 때면 다른 사람보다 미소가 하나 더 붙는다.
이번엔 연차였다. 열흘. 웬일로 상사가 딩톡으로 나를 쫓지 않았다. 알파마 언덕 중턱의 오래된 호텔을 잡았다. 창문은 테주강을 향해 있었고, 헬스장은 지하 1층, 입구에 풋사과 한 바구니와 커피 머신 한 대가 놓여 있었다.
문을 밀고 들어가니, 안에는 한 사람뿐이었다.
그는 벤치프레스 벤치에 누워 있었다. 바벨 양쪽에 20킬로그램 원판 두 장씩, 거기에 10킬로그램 한 장. 속으로 계산해 봤다. 120 조금 넘는다. 그는 서두르지도 늘어지지도 않고 밀었다. 밀 때마다 가슴이 두 덩어리로 부풀고, 땀이 쇄골을 타고 흘러내리고, 검은 피부가 천장 조명 아래서 번들거렸다.
나는 못 본 척 러닝머신에 올라 6.5에 맞췄다. 거울은 정확히 그를 마주하고 있었다.
내 몸은 달리면 볼품이 없다. 가슴이 크다. 스포츠 브라는 제일 강한 서포트로 사는데도 여전히 출렁인다. 엉덩이는 살집이 있고 허벅지는 굵어서, 레깅스를 뒤에서 보면 그냥 동그라미 두 개다. 서른이 넘고부터는 남들 앞에서 뛰지 않았다. 오늘도 아무도 없을 거라고 확신하고 내려온 거였다.
그런데 결국 나는 거울로 그를 네 세트 동안 훔쳐봤다.
다섯 번째 세트를 마치자 그는 일어나 앉아 땀을 닦고, 거울 속의 나에게 고개를 까딱했다.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고개를 숙여 화면만 노려봤다. 심박수 147.
【Marcus·그】
그녀가 들어오는 순간부터 눈에 들어왔다. 아시아 여자, 키는 작고, 회색 레깅스. 엉덩이가 너무 둥글어서 천이 터질 것 같았다. 위에는 검은 스포츠 브라, 그 안에서 가슴이 짓눌려 깊은 골을 만들고 있었다.
그녀가 뛰면 온몸이 떨렸다. 가슴이 한 번, 또 한 번 튀어 올랐는데, 정작 본인은 몰랐다. 네 번째 세트에서 나는 하마터면 바벨을 거치대에 못 걸 뻔했다.
수건을 가지러 일어났다가 그녀의 러닝머신 옆에 멈춰 섰다.
“Morning. You always run this early?”
【바이징·그녀】
“Only when I can’t sleep.” 내가 말했다. 영어는 내 밥줄이다. 회의도, 가격 협상도, 공급업체한테 호통치는 것도 다 영어로 한다. 그런데 그 순간엔 목소리가 잠겨 있었다.
“Jet lag?” 그가 웃었다. 이가 아주 하얬다.
“China. Seven hours.”
그의 이름은 Marcus. 애틀랜타에서 왔고, 서른 초반, 물류 회사에서 운영 일을 한다고 했다. 그도 휴가 중이었고, 혼자였다. 그는 거기 선 채로 나와 십 분을 이야기했다. 나는 끝내 러닝머신 정지 버튼을 누르지 못했다. 멈추면 가슴속에서 제멋대로 뛰는 이 두근거림을 숨길 수 없을 것 같아서.
다음 날 여섯 시, 그가 있었다. 그다음 날 여섯 시에도, 그는 여전히 있었다.
둘째 날 우리는 같이 스트레칭을 했다. 그는 고관절 여는 법을 가르쳐 주며 내 뒤에 쪼그려 앉아 골반을 아래로 눌렀다. 나는 레깅스 차림이었고, 엉덩이가 그의 허벅지에 그대로 닿아 있었다. 그는 그 틈을 타서 더듬지 않았다. 다 누르고 나자 바로 손을 뗐다. 오히려 내가 탈의실에 오 분을 앉아 있고서야 겨우 진정했다.
셋째 날 그는 스미스 머신 높이를 맞춰 주면서 뒤에서 내 허리를 한 번 받쳐 주었다. 딱 한 번, 옷 위로. 그것만으로 등 전체가 저릿했다.
“Hotel bar, tonight? Nine?” 그가 말했다. “They make a good white port tonic.”
좋다고 했다. 말하고 나서야 생각났다. 남자랑 단둘이 술을 마신 게 벌써 사 년 전이었다.
전 남자친구는 동료가 소개해 준 사람이었다. 엔지니어. 사람 좋고, 섹스도 반듯했다. 먼저 키스, 그다음 만지고, 그다음 들어온다. 십 분. 끝나면 좋았냐고 물어봐 주기까지 했다. 나는 좋았다고 했다. 나는 늘 내가 그냥 몸이 별로 뜨겁지 않은 여자라고 생각했다. 아쉬울 것도 없다고.
밤 여덟 시 오십 분, 짙은 초록색 슬립 원피스로 갈아입었다. 브라는 하지 않았다. 거울 앞에 삼십 초 서 있다가, 틀어 올렸던 머리를 풀어 내렸다.
루프톱 바에서는 강이 통째로 보였고, 건너편 불빛이 한 줄씩 켜지고 있었다. 그는 흰 셔츠 소매를 팔꿈치까지 걷어 올리고 있었다. 팔뚝이 내 종아리보다 굵었다.
나는 화이트 포트 토닉 한 잔만 시켜서 처음부터 끝까지 그것만 마셨다. 얼음이 다 녹았다. 나는 멀쩡했다. 멀쩡한 정신으로, 그의 손이 내 의자 등받이에 얹혔다가 내 허리로 내려앉는 걸 보고 있었다.
“You’re tense.” 그가 내 귓가로 다가와 말했다.
그리고 그게 느껴졌다.
오른쪽 귀에서 시작됐다. 그의 뜨거운 숨이 귓속으로 파고들어 쭉 아래로 내려갔다. 목, 등, 허리 오목한 곳, 허벅지 안쪽, 그리고 마지막에 발바닥에서 터졌다. 샌들을 신은 발가락이 저절로 오그라들어 신발 바닥을 긁었다. 서른여덟 해 만에 처음 알았다. 전기는 귀에서 발바닥으로 흐른다는 걸.
허벅지 사이가 순식간에 젖었다.
고개를 돌려 그를 봤다. 눈동자가 아주 검고, 속눈썹이 길고, 입술은 나와 손가락 두 개 너비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그 일 초 만에 정했다. 오늘 밤, 나를 그에게 줄 거라고.
“Your room or mine?” 내가 묻는 소리가 들렸다.
【Marcus·그】
그녀는 아주 담담하게 물었지만, 손은 내 셔츠 밑단을 움켜쥐고 있었다. 손가락 마디가 하얘져 있었다.
한 잔밖에 안 마셨으니까 지금 방에 돌아가서 자도 전혀 괜찮다고, 내일 아침 여섯 시에 헬스장에서 똑같이 보면 된다고 나는 말했다.
그녀가 고개를 저었다. “러닝머신에서 본 그날부터 정해 놨어요. 당신 방으로.”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자마자 나는 그녀를 안아 올렸다.
【바이징·그녀】
그는 한 손으로 내 엉덩이를 받치고, 엘리베이터의 거울 벽에 나를 밀어붙이고 키스했다. 두툼하고 부드러운 입술. 혀가 들어올 때 토닉의 쓴맛이 묻어났다. 나는 두 다리로 그의 허리를 감았다. 원피스는 허벅지 끝까지 말려 올라갔고, 차가운 거울이 맨 등에 달라붙었다.
심장이 쿵쿵 울렸는데, 그게 내 건지 그의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의 정장 바지 너머로 딱딱한 것이 내 다리 사이를 짓누르고 있었다. 굵고 길어서, 나는 위로 움찔 밀려 올라갔다. 머릿속에 생각 하나가 스쳤다. 저렇게 큰 게, 들어가긴 할까.
띵, 7층. 그가 나를 내려놓았지만 다리에 힘이 풀려 서 있을 수가 없었다. 거의 반은 부축받고 반은 안긴 채로 복도를 걸었다. 카펫이 두꺼웠다. 샌들 한 짝이 벗겨지자 그는 허리를 굽혀 그걸 주워 손에 달랑 들었다.
그가 카드키를 대자, 도어락이 삑 울리고 초록불이 켜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