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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1장 열려 있는 상자

나그네 · 2675자 · 한국어

【하오쓰쓰·아내】

이삿짐센터는 여덟 시 정각에 문을 두드렸다. 나는 아직 슬리퍼 한 짝을 찾는 중이었다.

“가요 가요 가요, 그만 두드려요, 초인종 고장 난 거 알아요, 두드리는 것도 알아요.” 나는 한 발로 콩콩 뛰어가서 문을 열었다. 문 앞에 두 사람. 앞에 선 남자는 백팔십이 넘고, 회색 작업 조끼에 어깨에 흰 수건을 걸쳤는데 수건은 이미 희지 않았다. 뒤에 선 남자는 말랐고, 납작하게 접은 종이상자 한 무더기를 안고 있었는데 상자가 그 사람 얼굴보다 높았다.

“콰이마 이사입니다. 사장님 안녕하세요.” 앞의 남자가 말했다. “사장님이라고 하지 마요, 난 을이에요, 남한테 그림 그려주는 을, 이 세상에서 제일 지위 없는 종족.” 나는 몸을 비켰다. “신발 안 벗어도 돼요, 오늘부터 이 바닥은 내 거 아니니까 마음껏 밟아요.”

그는 내 맨발 쪽을 한 번 내려다보더니, 아무 말 없이 들어왔다.

“난 하오쓰쓰, 서른 살, 게임 원화 그려요. 당신들 핸드폰에 있는 그 옷 거의 안 입은 여자 캐릭터들, 절반은 내가 그린 거예요. 믿지 마요, 십분의 일만. 나머지는 내 동료가 그렸어요, 걔가 나보다 가슴이 크고, 그리는 것도 나보다 커요.”

“다좡입니다, 서른다섯.” 그는 어깨에서 수건을 내려 손을 닦았다. “이쪽은 제 제자 샤오마, 스물둘, 작년에 막 제대했고요. 힘은 있는데 입이 없습니다.” “힘 있고 입 없는 거 좋네요, 난 입은 있는데 힘이 없거든요, 딱 합쳐서 한 사람.”

샤오마는 상자를 내려놓고 나한테 고개를 까딱하더니, 한마디도 없이 몸을 돌려 침실의 침대를 보러 갔다.

루이밍이 주방에서 나왔다. 손에는 차 키와 서류봉투. 내 남편, 서른두 살, 데이터 운영 일을 하고, 말수는 샤오마보다 몇 마디 많지 않다. “기사님 안녕하세요. 저는 부동산 등기센터 가서 등기증 받고, 가는 김에 가스 명의 이전도 하고 올게요. 점심 전엔 돌아와요.”

“가, 여긴 내가 있으니까.” 내가 말했다. “번호 몇 번 뽑았어?” “팔십칠.” “그럼 점심 전엔 못 와.”

그는 나를 한 번 보더니, 서류봉투를 겨드랑이에 끼웠다. “봉해 놓은 것들, 아무 데나 놓게 하지 마.” “알아, 당신보다 잘 알아.”

문이 닫혔다. 계단을 내려가는 그의 발소리는 두 층 만에 들리지 않게 됐다. 이 건물은 육 층에 엘리베이터가 없고, 우리는 오 층에 산다. 이사 들어오던 해에 그는 나를 업고 올라왔다. 지금은 못 업는다. 그는 내가 무거워졌다고 하고, 나는 그가 늙었다고 한다.

【다좡·단남】

이 집은 지난주에 견적 보러 왔었다. 육 층 건물에 엘리베이터 없음, 오 층, 방 둘 거실 하나, 짐 많지 않음, 트럭 한 대. 견적 보던 날 그녀는 치마를 입었다. 오늘은 너무 빨아서 목이 늘어난 흰 티셔츠, 밑단을 허리에서 묶어 배가 한 뼘 드러났고, 운동용 반바지, 허벅지 바깥쪽에 파란 줄 하나, 마커인지 뭔지 모르겠다.

입이 쉬지 않는다. 내가 들어온 뒤로 지금까지 한 번도 멈춘 적이 없다.

이 일을 십일 년 했으니 말 많은 손님은 숱하게 봤다. 보통은 낯을 가리거나, 우리가 물건 깨뜨릴까 봐 말로 감시하는 거다. 그녀는 아니다. 그녀는 정말로 생각나는 대로 말하고, 말하고 나서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는다.

“규칙 하나 말할게요.” 그녀는 거실 상자 더미 한가운데 쪼그려 앉았다. “테이프로 봉한 건 건드리면 안 돼요. 안에 내 원고, 태블릿, 남편 하드디스크 들어 있어서, 떨어뜨리면 내가 남편이랑 소파에서 자야 돼요. 열려 있는 건 마음대로 옮기고, 마음대로 봐요. 어차피 볼 것도 없으니까.”

“열려 있는 건 저희가 봉해야 합니다.” 내가 말했다. “안 봉하면 차에서 흩어져요.” “그럼 봉해요. 봉하기 전에 한 번 보여주고.” “네.”

테이프 커터를 들고, 상자 가운데 이음새에 맞추고, 테이프를 끝까지 당긴다. 찌익. 손바닥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쓸고, 톱니로 자른다. 삼 초.

그녀는 옆에서 보고 있었다. 눈이 내 손을 따라온다. “테이프 뜯는 그 소리, 우리 남편 폰에 있는 ASMR보다 듣기 좋네요. 걘 잘 때 그걸 들어야 하고, 난 잘 때 걔 코 고는 걸 들어야 하고, 우리 둘은 서로 듣고 살아요.” “다음이요.” 내가 말했다.

그녀는 또 한 상자를 밀어 왔다. 열려 있고, 맨 위에는 개어 놓은 속옷. 살구색, 검정, 한 장은 호피 무늬. 내가 본 것을, 그녀가 봤다.

“그건 내 거, 안 봉했으니까 보려면 봐요, 다 빤 거예요.” “안 봅니다.” “안 보고 어떻게 봉해요.”

나는 상자 뚜껑을 덮고 테이프를 당겼다. 찌익. 그녀가 웃음을 터뜨렸다. “뭘 얼굴이 빨개져요, 서른다섯이나 돼서.” “더워서요.”

덥긴 덥다. 엘리베이터 없는 건물에서 상자 하나하나 등에 지고 내려간다. 조끼는 땀에 흠뻑 젖어 등에 달라붙고, 턱에서 떨어진 땀이 상자 위에 떨어진다. 종이상자는 금방 빨아들이고, 한 방울마다 짙은 동그라미 하나. 네 번째로 올라왔을 때, 그녀가 찬물 한 병을 건넸다. 병은 온통 물방울이고, 그녀의 손가락도 젖어 있었다.

“제자는요, 걔한테도 한 병 줘요.” “침대 분해하고 있어요. 끝나면 알아서 마십니다.”

그녀는 쪼그려 앉은 채 고개를 들어 내가 마시는 걸 봤다. 티셔츠 목이 늘어나서, 위에서 내려다보면, 젖가슴은 크지 않고, 브래지어는 안 했고, 두 꼭지가 천을 밀어 올리고 있다. 내가 보는 걸 알면서 가리지 않고, 이어서 말했다. “물 마실 때 목젖이 진짜 세게 움직이네요. 남자 캐릭터 그릴 때 목젖이 맨날 잘 안 되는데, 다음엔 당신 보고 그릴래요.”

“마음대로 그리세요.” 나는 빈 병을 찌그러뜨려 열려 있는 쓰레기 상자에 던졌다.

【루이밍·남편】

부동산 등기센터는 아홉 시에 문을 연다. 여덟 시 사십 분에 도착했고, 번호표 기계가 종이 한 장을 뱉었다. 87. 전광판은 41을 부르고 있었다.

건너편에서 두유 한 잔을 사서 로비 맨 뒷줄에 앉았다. 핸드폰이 한 번 울렸다. 쓰쓰가 보낸 거였다. “천천히 해, 여긴 내가 있어.”

나를 재촉하지 않는다. 결혼 사 년, 그녀는 뭘 하든 나를 재촉했다. 밥 먹으라고 재촉하고, 씻으라고 재촉하고, 그녀가 그림 그리고 내가 옆에서 게임하면 가서 자라고 재촉했다. 오늘은 재촉하지 않는다.

지난주에 그녀가 이삿짐센터를 알아보면서 세 군데에 전화를 걸고 여기를 골랐다. 이유는 “견적 보러 온 기사님 말투가 진실돼서”. 견적 보던 날 그녀는 치마로 갈아입었다. 평소엔 집에서 그림 그리느라 사흘 옷 안 갈아입을 때도 있다.

나는 묻지 않았다. 나는 그런 사람이다. 본 건 본 거고, 입 밖에 내도 뭐가 더 생기지 않는다.

그녀가 나한테 그 기사 얘기를 할 때 “다좡”이라고 두 번 말했다. 다른 기사들 얘기를 할 땐 “물 배달하는 사람”, “에어컨 고치는 사람”이었다.

52번이 불렸다. 두유를 다 마시고 종이컵을 찌그러뜨려, 버리지 않고 손에 들고 있었다. 가스 회사는 다른 건물에 있어서 여기 끝나면 거기로 가야 한다. 어떻게 계산해도 오후다. 나는 그녀에게 “응”이라고 답했다. 평소에 “응”이라고 답하면 로봇이랑 얘기하는 것 같다고 싫어한다. 오늘은 웃는 이모티콘이 돌아왔다.

【하오쓰쓰·아내】

샤오마가 침실에서 침대를 분해했다. 나사를 하나하나 풀어서 비닐봉지에 담고, 봉지를 묶고, 테이프 한 장을 붙여서 “침대”라고 썼다. 그의 글씨는 내 남편보다 예뻤다. 다 쓰고 나서 혼자 침대 판을 한 장씩 아래로 날랐다. 올라가고 내려가고, 계단에 울리는 발소리가 가볍다가 무겁다가. 가벼운 건 내려가는 거, 무거운 건 올라오는 거.

거실에는 나와 다좡만 남았다.

쪼그려 앉아 상자를 붙잡는데, 상자의 거친 모서리가 검지를 스치고 지나갔다. 한 줄, 깊지 않게, 피가 바로 솟았다. “씨발.” 내가 말했다. “종이가 칼보다 빨라.”

그는 내가 반창고 찾는 걸 기다리지 않고, 테이프를 한 토막 찢어, 내 손을 끌어당겨 검지에 그 토막을 두 바퀴 감았다. “테이프로 지혈. 이 바닥 토박이 방법이에요.”

그의 손은 거칠었다. 손가락 끝은 온통 딱딱한 굳은살, 엄지와 검지 사이엔 오래된 흉터, 손가락엔 테이프 접착제가 남아 끈적끈적한데, 내 손등에 닿았을 때 쩍 하고 당겨져서 손등의 솜털이 따라 섰다.

“손 진짜 거칠다.” 내가 말했다. “우리 남편 손은 나랑 똑같아요, 매일 키보드 만져서 여자처럼 만져져요, 남편 말고 우리 둘 다 똑같다는 얘기.” “거친 게 싫어요?” “안 싫어요. 사실을 말하는 거예요.”

그가 내 손을 놓았다. 내 검지에 감긴 테이프는 노란색이고, ‘콰이마 이사’ 글자가 찍혀 있었다. 한 바퀴에 하나씩.

“나도 당신들한테 봉해진 거예요?” “봉했으면 못 건드려요.” 그가 말했다. “누가 그래요.” “당신이요, 아까.”

나는 멍해져서 말을 받지 못했다. 오늘 아침부터 지금까지, 말을 못 받은 건 처음이었다.

그는 몸을 돌려 상자를 날랐다. 조끼 등판이 크게 젖어, 견갑골에서 허리까지 달라붙어, 척추 양쪽의 근육 두 줄기가 보였다. 테이프 밑에서 내 손가락이 팔딱팔딱 뛰었다. 피가 뛰는 건지 다른 건지 몰랐다.

짐이 다 빠졌을 땐 이미 열한 시 반이었다. 빈집은 말하면 울린다. 거실 한가운데 서서 “야” 하고 외쳤더니, 메아리가 “야” 하고 돌아왔다.

“이 집에서 사 년 살았어요. 벽에 저 자국은 우리 남편이 머리로 박은 거예요. 그때 싸우다가 열받아서 벽을 박았는데, 박고 나서 머리 아프다고 해서 내가 삼십 분을 웃었어요. 결혼했어요?” “이혼했어요.” “아. 그럼 벽에 머리 박아본 적 있어요?” “없어요. 사람을 박죠.”

“사람 박는 게 좋네요, 사람 박으면 안 아프잖아요.” 말하고 나니 아닌 것 같아서 덧붙였다. “당신이 안 아프다는 말이에요.” 그는 웃지 않았다. 하지만 입꼬리가 한 번 움직였다.

“그만 말해요.” 다좡이 말했다. “마지막 상자.”

마지막 상자는 침실 문 앞에 있었다. 열려 있고, 안에는 내 잠옷, 갈아입을 옷, 수건 한 장, 오늘 밤 쓸 것들. 나는 옆에 쪼그려 앉아 잠옷을 아래로 꾹꾹 눌렀다.

“우리 엄마가 그랬어요, 이사할 때 사람이 마지막 짐이라고.”

그는 테이프 커터를 들고 내 앞에 서서, 내가 비키길 기다렸다. 아래에서 샤오마가 트럭 짐칸 문을 닫았다. 쾅, 한 번.

나는 비키지 않았다. 그의 손에서 테이프 커터를 가져와서, 다시 그의 손에 쥐여줬다.

“내 상자부터 먼저 봉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