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밍·남편】
화요일 밤 열한 시 이십 분, 침실에는 그녀의 휴대폰 불빛만 남아 있었다. 란즈는 옆으로 누워 아직도 납품 계약서를 고치고 있었다. 엄지로 화면을 넘기며, 한 번 넘길 때마다 “병신 같은 갑” 하고 한마디씩 욕을 뱉었다.
나는 그녀의 뒷목을 한참 바라봤다. 서른세 살 남자, 프로덕트 매니저. 매일 남들한테 요구사항 문서를 써 주면서, 정작 내 요구사항은 2년을 꾹 눌러 둔 채 꺼내지 못했다.
“즈.” “말해.” “네가 다른 남자랑 하는 거, 보고 싶어.”
그녀의 엄지가 잠깐 멈췄다가 다시 화면을 넘겼다. “구두 청약은 접수 안 해.” “뭐?” “진심이면 서면으로 써 와. 못 쓰겠으면 입 닫고 자.”
그녀는 휴대폰을 베개 옆에 내려놓고 몸을 돌려 내게 등을 보였다. 나는 섰다. 창피할 만큼 빳빳하게. 지난 2년 동안 나는 불투명 유리 너머로 그녀가 샤워하는 걸 훔쳐봤고, 한밤중에 그녀가 돌아누우며 내는 숨소리를 녹음했다. 아이폰 메모 앱에는 ‘즈·신음·3월 14일’이라는 파일이 하나 있다. 40초짜리. 나는 그런 인간이고, 그녀는 그걸 안다.
【란즈·아내】
나는 안 잤다. 그는 내가 잠든 줄 알겠지만, 사실 나는 서식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 숨소리, 그렇게 거칠게. 서른세 살 먹은 남자가 그 한마디 꺼내는 데 2년이 걸렸고, 등이 땀으로 흠뻑 젖도록 참았다. 손가락이 그의 팔에 닿았는데, 축축했다.
서른한 살, 로펌 계약 담당 어시스턴트, 7년 차. 내가 검토한 계약서를 쌓으면 내 키보다 높다. 남편이 내가 딴 남자한테 박히는 걸 보고 싶다고? 좋아, 그럼 규칙대로 하자. 규칙을 명확히 써 놓고도 망한 일은 내 평생 본 적이 없다.
다음 날 오전 열 시, 납품 계약서 두 건 사이에 20분을 끼워 넣고 새 문서를 열었다. 제목에 네 글자를 쳤다. 이행 협약. 옆자리 샤오팡이 고개를 내밀고 뭐 쓰냐고 묻길래 “비밀유지 계약서”라고 했더니 아, 하고 도로 들어갔다. 다섯 장, 일곱 조, 부속서 하나. 다 쓰고 처음부터 직접 한 번 검토해서 ‘한다’ 세 곳을 ‘하여야 한다’로 고쳤다.
제1조, 기간 30일, 최초 이행일부터 기산. 제2조, 을의 자격: 만 25세 이상, 3개월 이내 건강검진 결과서, 고정 파트너 없을 것. 제3조, 시간과 장소는 갑이 지정, 호텔은 4성급 이상, 비용은 병 부담.
제4조, 병 치밍은 입회할 수 있으나 갑이 지정한 좌석에 앉아야 하며, 일어서서도 말해서도 안 된다. 을은 병과 대화해서는 안 된다.
제5조, 을은 전 과정 콘돔을 사용한다. 제6조, 병은 녹음할 수 있으나 촬영은 불가, 녹음 파일은 갑의 소유로 한다.
제7조, 어느 쪽이든 ‘종료’ 두 글자를 입에 올리면 본 협약은 당일 폐기되며, 사유를 요하지 않고 책임을 묻지 않는다.
부속서는 마지막 장, 표 하나. 30행, 행마다 빈칸 셋. 날짜, 을 서명, 갑 검수.
두 부를 출력하고 간인은 내 이름 도장으로 찍었다. 저녁 여덟 시, 밥상에서, 그가 아직 밥그릇도 내려놓기 전에 계약서를 밀어 줬다.
“서명란은 5페이지. 다 읽고 서명해. 너네 회사 요구사항 사인하듯이 씨발 대충 긁지 말고.”
그는 제6조를 두 번 읽었다. 두 번 읽을 줄 알았다. 녹음, 그 두 글자는 그를 위해 쓴 거니까.
“녹음은 네 거야?” “갑 소유. 갑은 나. 너는 병.” “병은 말을 못 해?” “병은 숨은 쉬어도 돼.” “그럼 나는……” “하고 싶은 말 있으면 제7조에 남겨 뒀어. 두 글자. 언제든 말해.”
그는 서명했다. 펜은 내가 건넸다. 로펌에서 나눠 준 검은 중성펜. 서명을 마친 그의 손이 떨렸고, 밥도 다 못 먹고 서재로 들어갔다. 안에서 뭘 하는지 안다. 문틈으로 빛이 새고, 규칙적으로 들썩이는 기척이 있었다.
“사람은 내가 고른다.” 문 너머로 말했다. “넌 고르지 마. 네가 고르면 분명 병신 같은 놈이야.”
문 안의 기척이 2초 멈췄다가, 다시 이어졌다.
【치밍·남편】
금요일 밤 그녀가 사진 한 장을 보냈다. 헬스장 유리문 밖에서 몰래 찍은 거였다. 남자 하나가 카메라를 등지고 스쿼트 랙을 닦고 있는데, 광배근이 유니폼을 판자처럼 팽팽하게 당기고 있었다. “이 사람. 토요일 면접.”
나는 답했다. “나도 가도 돼? 멀찍이 앉을게.” “면접에 병은 안 와. 아둬 호텔 예약해. 수요일 밤, 고층, 책상 있는 룸으로.”
방을 잡았다. 1517호, 이그제큐티브 더블, 책상은 창가. 예약을 마치고 그 뒷모습 사진을 40분 넘게 들여다봤다. 그녀의 손이 저 등에 얹히는 걸 상상했고, 그녀의 신음이 3월 14일 그 메모랑 다를지 상상했다. 밤새 서 있었지만 손대지 않았다. 수요일까지 아껴 두고 싶었다. 제6조에 녹음이라 적혀 있었다. 아이폰 음성 메모를 싹 정리해서 12기가를 비웠다.
【친예·단남】
토요일 오후 세 시, 완샹청 3층 카페 창가 자리. 그녀가 먼저 와 있었다. 올블랙 정장에 머리는 올려 묶었고, 테이블에는 크라프트지 서류철 하나와 손도 안 댄 아메리카노 한 잔.
나는 스물아홉, 헬스장 PT 트레이너다. 회원 300명 넘게 가르쳤지만 이런 눈으로 훑어진 적은 없었다. 그녀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다시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봤다. 중고 러닝머신 검품하듯이.
그녀는 우리 센터에서 넉 달째 운동했다. 화·목 저녁 일곱 시, 스쿼트 랙은 언제나 세 번째. 보조를 두 번 해 줬는데, 손을 허리 옆에 댔더니 두 번째에 돌아보며 “손 함부로 두지 마”라고 했다. 어제 그녀가 위챗 친구를 추가하고 딱 한 줄 보냈다. 토요일 오후 세 시, 완샹청 3층, 건강검진 결과서 지참.
“검진 결과서.” 종이 두 장을 건넸다. B형 간염 5종 검사, 에이즈, 매독, 전부 음성. 사흘 전 시 제2병원에서 받은 거다. 그녀는 손톱으로 짚어 가며 한 줄 한 줄 읽었다.
“날짜 괜찮네. 앉아.” 앉았다. 커피는 안 시켰고, 그녀도 묻지 않았다.
“머신 구역에서 넉 달 동안 나 쳐다본 거, 알아. 이제 기회 하나 줄게. 본 건 전부 만질 수 있어. 조건은 여기.”
서류철이 밀려왔다. 다섯 장, 빽빽했다. 첫 장을 펼치는데 손바닥에 땀이 났다.
“읽어.” 그녀가 말했다. “네?” “제2조, 소리 내서 읽어. 네가 읽는 걸 듣고 싶어.” 읽었다. 신규 회원한테 입회 안내문 읽어 주듯이. “을의 자격: 만 25세 이상, 3개월 이내 건강검진 결과서, 고정 파트너 없을 것.”
“고정 파트너 있어?” “없습니다.” “마지막은 언제?” “두 달 전, 회원이요.” “아직 연락해?” “안 해요. 회원권 해지했어요.” “길이는?”
멍해졌다. 그녀가 눈꺼풀을 살짝 들었다.
“섰을 때 길이. 몇 센티. 부속서에 적을 거야. 허위 기재는 계약 위반.” “18이요.” “둘레.” “재 본 적 없는데요.” “오늘 밤 가서 재. 사진 찍어서 보내. 얼굴은 빼고.” 이 말을 하는 내내 그녀의 눈은 계약서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주민번호 묻듯이.
그녀가 4페이지를 펼치고 제4조를 짚었다. “내 남편이 방 안에 앉아 있을 거야. 너는 그 사람한테 말 걸지 말고, 그 사람도 너한테 말 안 해. 움직이지도 않을 거고. 궁금한 거 있으면 나한테 물어.”
“보고 있는다고요?”
“보고 있어. 불편하면 지금 가도 돼. 커피는 내가 살게.”
“시간은요?” “저녁 여덟 시부터 열한 시. 하루에 한 번, 30일에 서른 번, Day 1부터 Day 30까지. 한 번이라도 빠지면 위약이야. 네 수업은 앞으로 당겨.” “토요일 저녁엔 그룹 수업이 있는데요.” “사람 바꿔. 못 바꾸면 서명하지 마.”
안 갔다. 그녀가 손을 뻗었다. 악수가 아니라 내 손목을 쥐었다. 엄지를 맥에 대고 3초. “심박 120.” 그녀가 말했다. “좋네. 연기 안 해도 돼서.”
그녀의 목소리는 평탄했다. 조항을 읽을 때 글자 하나하나 정확하게 씹어 뱉었고, 테이블 밑에서 내 바지는 이미 솟아 있었다. 창피한 일이다. 여자한테 납품업체처럼 심사당하면서, 심사당하다 서다니. 내가 평생 수업에서 회원들한테 소리 지른 걸 다 합쳐도 그녀의 “앉아” 한마디만큼 먹히지 않았다.
“제5조, 전 과정 콘돔 착용.”
“콘돔은 제가……” “네가 뭐?” “느낌이 떨어져서요.”
“제5조는 추가 조항으로 손볼 수 있어. 네 이행 품질 보고.” 그녀의 펜촉이 제5조 위를 두 번 두드렸다. “앞의 네 조항부터 제대로 해.”
“그럼 제3조, 호텔은……” “내 남편이 잡아. 너는 오기만 해. 15분 이상 늦으면 그 회차는 무효. 보충 없어.”
그러고 나서 그녀가 제7조를 펼쳤다. 나한테 읽으라 하지 않고 자기가 읽었다.
“어느 쪽이든 ‘종료’ 두 글자를 입에 올리면 본 협약은 당일 폐기되며, 사유를 요하지 않고 책임을 묻지 않는다.”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너, 나, 내 남편. 누가 말해도 성립해. 내가 너한테 질리면, 종료라고 해. 네가 겁나면, 종료라고 해. 그 사람이 못 견디면, 종료라고 해. 알아들었어?”
“네.” “서명해.” 펜이 건너왔다. 검은 중성펜, 펜대에 작은 글씨가 한 줄 찍혀 있었다. 그녀 로펌 이름이었다. 나는 제7조 아래에 친예 두 글자를 썼다. 손이 첫 수업 때보다 더 떨렸다.
그녀는 그 장을 빼서 휴대폰으로 한 장 찍었다. 그러고는 단톡방을 만들었다. 세 명. 방 이름은 그냥 ‘이행’. 사진을 올리고, 길게 눌러 공지로 올렸다.
휴대폰이 한 번 진동했다. 공지가 떴다. 제7조, 흰 종이에 검은 글씨. 아래에 내 서명, 그 위에 그녀의 서명, 그 위에 또 다른 이름 하나, 치밍. 방에 있는 또 하나의 프로필은 회색 고양이였다. 말이 없었다. 보고 있는 걸 안다. 자기 아내가 방금 내 앞에서 내 심박을 쟀는데, 그는 보고 있다.
그녀가 아메리카노를 들어 한 모금 마셨다. 드디어 마셨다. 그러고 서류철을 덮었다.
나는 휴대폰을 뒤집어 놓고 그녀를 봤다. “갑의 검수는 언제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