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커·그녀】
"다시 해." 나는 이천의 견적서를 도로 밀어 주고, 펜 뚜껑으로 3페이지 환율 칸을 두 번 두드렸다. "엔화는 지난주 금요일 환율로 계산해야지. 넌 지난달 걸 썼잖아. 40만 엔 넘게 차이 나. 오사카 사장님이 우릴 바보로 볼 거야."
이천은 서류를 받아 들고 살짝 삐뚤어진 덧니를 드러내며 웃었다. "네, 과장님, 바로 다시 하겠습니다. 과장님, 오늘 스웨터 진짜 예쁘시네요." 그는 스물다섯, 지사에 들어온 지 1년 반. 손보다 입이 빠르고, 과 전체에서 나한테 능글맞게 굴 수 있는 건 그 하나뿐이었다. 그래도 내가 다시 하라고 하면 매번 군말 없이 다시 해 왔다.
내 이름은 중커, 서른다섯 살. 중국계 무역회사 도쿄 지사에서 과장을 맡고 있고, 밑에 일곱 명이 있다. 지사 사람들은 뒤에서 나를 '멸절사태'라고 부른다. 들은 적도 있지만 신경 안 쓴다. 나는 늘 헐렁하게 입는다. 니트는 한 치수 크게, 스커트는 발목까지, 머리는 낮게 하나로 묶는다. 가슴 큰 여자가 사무실에서 헐렁하게 입지 않으면, 매일같이 남들 시선을 상대해야 한다.
남편 텅위안은 나보다 세 살 많고, 시나가와의 일본 회사에서 기술직으로 일한다. 결혼한 지 7년. 올해 들어 밤 열한 시까지 야근은 예사였고, 집에 오면 샤워하고 바로 쓰러져 잤다. 침대 옆 가습기가 보글보글 하얀 김을 뿜고, 그는 나한테 등을 돌린 채 코를 곤다. 마지막으로 한 건 그의 생일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10분도 안 걸렸고, 싸자마자 그는 샤워하러 갔다.
10월 말, 오사카에서 주방용품을 만드는 오랜 거래처가 내년도 연간 계약을 협상하자고 해 왔고, 부장이 한 사람 데리고 가라고 했다. 나는 이천을 골랐다. 일본어를 잘하고 간사이 사투리도 알아듣는다. 출발하는 날 아침, 도쿄역 플랫폼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그가 로손 따뜻한 라테 두 잔을 들고 뛰어와 한 잔을 내밀었다. "과장님, 덜 달게. 기억하고 있었어요."
신칸센에서 그는 내내 잤고, 나는 내내 계약서를 고쳤다. 신오사카에 도착한 게 오후 두 시, 협상은 저녁 일곱 시까지 이어졌고, 상대 사장이 마침내 물러섰다. 단가 3포인트 인하, 물량 20퍼센트 증가. 거래처 건물을 나서자 오사카 바람이 매서웠다. 이천은 양복 재킷을 어깨에 걸치고 나한테 브이를 해 보였다. "과장님, 따냈어요! 축하해야죠. 오늘 밤은 제가 쏩니다."
【이천·그】
내가 그녀를 데려간 곳은 난바의 좁은 골목에 있는 이자카야였다. 입구에 빨간 등롱이 두 개 걸려 있고, 안은 전부 다다미 작은 칸막이 방이었다. 미닫이문을 닫으면 바깥의 소란이 한 덩어리로 먹먹해졌다. 중커는 신발을 벗고 롱스커트를 다리 밑으로 여미고 낮은 상 앞에 무릎 꿇고 앉았다. 허리와 등이 주간 회의 할 때처럼 꼿꼿했다.
닭꼬치, 다마고야키, 회 한 접시를 시키고, 그녀에겐 우메슈 소다, 나는 생맥주. 한 잔만 마신다던 그녀는 두 잔째에 볼에 옅은 분홍빛이 떠올랐고, 어깨가 풀리더니 마침내 무릎 꿇기를 그만뒀다. 두 다리를 비스듬히 방석 위로 흘리자 치맛자락 아래로 매끈한 발목이 드러났다.
회사에서는 그녀를 제대로 쳐다볼 엄두도 못 냈다. 그 커다란 회색 스웨터 밑에 대체 뭐가 있는지, 지사 남자들은 다들 몰래 짐작해 본 적이 있다. 대학 시절 나는 꽤 놀았고, 잔 여자는 나도 셀 수 없을 정도다. 여자 몸매는 한눈에 대충 감이 온다. 그런데 그녀의 그 스웨터만은 도무지 감이 안 잡혔다.
그녀의 휴대폰이 반짝 켜졌다. 라인이었다. 그녀는 힐끗 보고 두 글자를 쳐서 보내고는 휴대폰을 테이블에 엎어 놓았다. 화면에 뜬 이름이 보였다. 그녀 남편이었다.
"텅 형님이 감시하세요?"
"도착했냐고." 그녀는 젓가락으로 다마고야키를 쿡쿡 찔렀다. "도착했고 밥 먹는 중이라고 했어. 읽고 답은 없네."
【중커·그녀】
이천은 내 잔에 우메슈를 반쯤 더 따르고, 자기 맥주를 단숨에 비운 뒤 잔을 탁 내려놓았다.
"과장님, 하나 여쭤봐도 돼요? 혼내지 마시고요."
"말해 봐." 나는 다마고야키 한 조각을 집었다. "혼낼지 말지는 뭘 묻느냐에 달렸어."
"과장님 대체 무슨 컵이에요? 부서 전체가 내기하고 있거든요. 전 B에 걸었어요."
도쿄였다면 그 말을 도로 삼키게 한 다음 오늘 회의록을 다시 쓰게 했을 거다. 그런데 여긴 오사카였고, 계약은 막 따냈고, 우메슈의 단맛이 아직 혀에 남아 있었고, 미닫이문 밖에서는 한 테이블이 간사이 사투리로 목청껏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갑자기 멸절사태 노릇이 하기 싫어졌다.
"D." 내가 말했다.
"말도 안 돼요." 그는 웃음을 터뜨리며 뒤로 젖혔다. "과장님, 놀리지 마세요. 그 스웨터 밑은 복사기처럼 납작하잖아요."
그 말에 욱했다. 서른다섯 먹은 여자가 스물다섯짜리 애송이한테 절벽 소리를 듣다니, 그냥 넘길 수가 없었다. 게다가 요 며칠은 생리 직전이라 가슴이 딱딱하게 부어서, 아침에 브래지어 후크 채우는 것도 힘들었고, 평소 입던 D가 하루 종일 조여서 숨도 제대로 못 쉬었다.
"못 믿겠으면 직접 만져 보든가."
말이 나오자마자 칸막이 방이 조용해졌다. 이천의 웃음이 얼굴에 그대로 굳었다. 그는 나를 빤히 보더니 목젖이 위아래로 꿀렁 움직였고, 목소리가 낮아졌다. "과장님, 진짜 돼요?"
【이천·그】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우메슈 잔을 들었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잔 바닥이 나무 테이블에 부딪혀 탁 소리가 났다. 3초를 기다렸다. 그녀는 안 된다고도 하지 않았고, 눈을 피하지도 않았다.
나는 옆으로 옮겨 가 그녀에게 바짝 붙어 앉았다. 다다미 골풀 냄새에 그녀 머리카락 냄새가 섞였다. 아주 옅은 화이트티 향. 스웨터 밑단으로 손을 넣어 손끝이 그녀 허리 살갗에 닿자, 그녀가 온몸을 움찔 떨었다. 피하지는 않았다.
【중커·그녀】
그의 손은 뜨거웠다. 스웨터 밑에서 그의 손가락이 갈비뼈를 따라 기어 올라와 브래지어 아래쪽 와이어에 닿더니, 잠깐 멈췄다가, 손바닥 전체로 덮어 와 레이스 너머로 내 왼쪽 가슴을 감쌌다.
그만하자고 말하려 했는데, 입이 한 박자 늦었다. 그가 살짝 쥐자마자 컵 안에서 젖꼭지가 딱딱해졌다. 아플 만큼 딱딱해져 레이스를 밀어 올렸으니, 그도 분명 느꼈을 거다. 그의 엄지가 그 한 알을 스치고 지나가, 나는 입술을 깨물고서야 신음을 삼켰다.
그가 내 귀에 얼굴을 대고 뜨거운 숨을 불어넣었다. "과장님, 섰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