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란·아내】
헤이스탄 캠핑장, 해발 3200미터, 오후 5시 10분. 나는 알루미늄 냄비 앞에 쪼그리고 앉아 가스캔 하나를 쥐고 있었다. 캔과 버너 헤드의 입구가 안 맞는다. 세 번 돌렸더니 손에 기계기름 냄새만 남았다.
“비양, 라이터 어딨어?”
차 지붕에서는 대꾸가 없었다. 우리 집 그이, 서른세 살 캠핑 장비 유튜버는 루프랙에 엎드려 카메라에 방풍 커버를 씌우면서 혼자 중얼거리고 있었다. “인터벌 30초, 먼저 노을, 별 뜰 때까지, 한 장도 끊기면 안 돼.”
“라이터.” “가방 안에.”
가방 세 개를 바닥까지 뒤집었다. 형광 로프 두 뭉치, 카라비너 네 개, 뜯지도 않은 모기향 패드 한 상자. 라이터는 없었다. 나는 서른 살, 시내에서 카페 하나를 하고, 핸드드립 라테로 백조를 그릴 수 있다. 그런데 해발 3200미터에 오니 냄비 하나 물도 못 끓인다. 남한테 말하면 개그다. 아무도 안 웃는 쪽의 개그.
일어나서 바지에 붙은 풀 부스러기를 털고 옆 사이트를 봤다. 회색 1인용 텐트. 남자 하나가 접이식 테이블 앞에 앉아 작은 망치로 돌을 두드리고 있었다. 똑, 똑, 한 번에 하나씩. 우리 집 그이 셔터 소리보다 훨씬 박자가 있었다.
【웨촨·단남】
그 여자가 이쪽으로 걸어올 때 나는 암심 봉투 하나에 번호를 매기고 있었다. 테이블에는 돌 스무 몇 개가 놓여 있었고, 그걸 본 여자가 눈에 띄게 한 번 멈칫했다. 아마 파는 줄 알았겠지.
“안녕하세요, 불 좀 빌릴 수 있을까요? 우리 집 그이가 라이터를 숨겼는데, 자기도 못 찾을 만큼 숨겨놔서요.”
얇은 플리스를 입고 지퍼를 턱까지 올렸다. 얼굴은 고원 햇볕에 조금 붉었고, 말하면서 자기가 먼저 웃더니, 웃고 나서 한마디 보탰다. “알아요, 카페 하는 여자가 산꼭대기까지 와서 불 빌리는 거, 꽤 쪽팔리죠.”
바지 주머니에서 방풍 라이터를 꺼내 건넸다. “옆면 누르고. 바람 셀 땐 버너 헤드에 바로 대요.”
“지질 쪽이세요?” “탐사. 이 일대 암층, 혼자 3년 돌았어요.” “혼자요?” “혼자가 조용하니까.” 내가 말했다. “웨촨. 서른여섯. 여긴 일곱 번째.”
“징란. 서른. 처음.” 그녀가 라이터를 흔들어 보였다. “가서 물 끓일게요. 끓으면 한 잔 갖다 드릴게요. 커피 파는 사람이라 솜씨는 그럭저럭 돼요. 물 끓이는 것보단 나아요.”
걸어 돌아가는 등이 아주 곧았다. 바지는 캠핑용품점 기본템 워크팬츠고 허리께가 한 줄 잘록하게 조여 있었다. 허리를 굽혀 불을 붙일 때 그 허리선이 아래로 눌리면서 엉덩이가 천을 둥글게 팽팽히 당겼다. 버너가 푹 하고 붙었고, 그녀가 돌아보며 라이터를 이쪽으로 한 번 들어 올렸다. 나는 손에 든 암심을 봉투에 도로 넣다가 번호를 잘못 썼다는 걸 알았다. 그녀가 말한 그 숫자를 써놓고 있었다.
【비양·남편】
“여러분, 오늘은 헤이스탄입니다, 해발 3200미터. 이번 캠핑 사이트 세팅 보여드릴게요.”
폰을 들고 텐트를 한 바퀴 돌았다. 오렌지색 2인용 텐트, 매트, 침낭 두 개를 하나로 이어놨다. 렌즈가 텐트 문을 지날 때 일부러 한 박자 멈췄다. “이거 작은 팁인데요, 지퍼 손잡이마다 형광 로프를 한 가닥씩 묶어놨어요. 밤에 불 안 켜도 손으로 더듬어 찾을 수 있어요.” 형광 초록 파라코드가 바람에 한 번 흔들렸다. 아주 밝았다.
화면 밖에서 징란이 소리쳤다. “물 끓었어, 면 불어.”
“우리 징 사장님.” 렌즈를 돌리자 냄비 앞에 쪼그리고 앉아 젓가락으로 면을 젓고 있었다. “카페 사장님, 오늘 식사 담당입니다.” “불리기 담당.” 그녀가 카메라를 향해 눈을 흘겼다. “여러분, 이 사람 따라 하지 마세요. 라이터도 안 챙겨 왔어요.”
녹화를 멈췄다. 그녀가 면 두 그릇을 날라 오더니 보온컵에 블랙커피를 반쯤 따랐다. 옆집에 갖다 주겠다고.
“옆집 그 사람?” “라이터 빌려줬잖아. 넌 라이터 하나도 없으면서.” “혼자야?” “지질 탐사래. 혼자 3년 돌았대.” 그녀가 잠깐 뜸을 들였다. “사람 괜찮더라. 말은 별로 없고.”
옆 사이트를 봤다. 마침 그 남자가 고개를 들었다. 키가 크고 어깨가 넓었다. 손에 든 작은 망치가 돌 하나를 두 번 두드렸고, 소리가 맑았다. 10미터 떨어졌는데 내 차 문을 두드리는 것처럼 들렸다.
나는 말하지 않았다. 우리 둘 사이엔 한 번도 터놓고 말한 적 없는 일이 하나 있다. 2년 전 그녀 생일날 밤, 술이 과한 내가 귓가에 한마디 했다. 네가 딴 남자한테 박히는 걸 보고 싶다고. 그녀는 그때 웃으면서 내 뺨을 한 대 치고, 술 처먹었다고 입에 문짝이 없냐고 욕했고, 그 뒤로 우리 둘 다 다시 꺼내지 않았다. 하지만 그 뒤로 할 때마다, 내가 위고 그녀가 아래일 때, 그녀의 눈은 늘 감겨 있었다. 눈을 감고 누구를 보는지 나는 모른다.
【징란·아내】
어두워지는 게 빨랐다. 커피를 들고 갔을 때 웨촨은 돌을 정리하고 있었다. 하나씩 캔버스 자루에 넣고 있었고, 돌과 돌이 부딪혀 딱 하고 울렸다.
“설탕 없이요. 솜씨 없다고 흉볼까 봐, 먼저 쓰게 드려요.”
그가 받아서 한 모금 마셨다. 맛있다고도 맛없다고도 안 하고 그냥 고개만 끄덕였다. 그런 사람은 끄덕이는 게 남들 백 마디보다 실하다.
나는 그의 접이식 테이블 옆에 앉았다. 그의 텐트 문 지퍼는 반만 열려 있었고, 안에 침낭 하나와 작은 랜턴 하나가 보였다. 불빛은 따뜻한 노란색이었고, 침낭 위에 펼쳐진 야외 기록장을 비추고 있었다.
“텐트 꽉 안 닫아요? 모기 안 들어가요?”
“팀 규칙이에요.” 그가 말했다. “야외에선 캠프 하나에 텐트가 열몇 동이라, 아무도 사람을 안 불러요. 지퍼가 끝까지 올라가 있으면, 오지 마라. 반만 내려가 있으면, 들어와서 앉아도 된다.”
“말은 안 하고요?” “말 안 해요. 한 번 소리치면 캠프 전체가 듣지만, 지퍼는 보려는 사람한테만 보이니까.”
나는 웃었다. “우리 텐트는 지퍼 손잡이에 형광 로프까지 묶여 있어서 10미터 밖에서도 보여요. 못 볼까 봐 겁나는 것처럼.” “그건 남편분이 묶은 거예요?” “그이가 묶었어요. 영상 찍는 데 써요. 묶고 나서 설명까지 한 번 해야 하고.”
나는 일어섰다. “갈게요. 컵은 내일 가져갈게요.”
웨촨이 고개를 들어 나를 봤다. 작은 불빛 아래 눈이 아주 까맸다. “지퍼 얘긴, 기억만 해두면 돼요.”
돌아오는 길에 다리가 좀 풀렸다. 물론 고산병일 수도 있다. 나라는 인간은 다른 재주는 없어도 민망할 때만큼은 입이 유난히 빠르다. 어떤 자리에서든 나 자신을 깔고 한마디 받아칠 수 있다. 그런데 그 “지퍼 얘긴”에 나는 한마디도 못 받아쳤다. 우리 텐트 문 앞까지 오자 형광 로프가 눈앞에서 흔들렸다. 나는 그걸 3초 내려다봤다. 아는 사람 보듯이.
【비양·남편】
밤 9시, 텐트 안, 우리 둘은 나란히 누워 있었다. 헤드랜턴은 껐다.
“옆집 그 사람, 널 보는 눈빛 봤어?” “봤어. 내 커피 보더라.” “징란.”
그녀가 몸을 뒤집어 내게 등을 돌렸다. 텐트 밖은 벌레 소리가 빽빽했고, 옆 사이트의 가스스토브가 아직 쉭쉭 울렸고, 간간이 그 남자의 냄비 뚜껑이 달그락했다.
“2년 전 그 말,” 내가 말했다. “나 안 취했었어.”
그녀는 움직이지 않았다. “오늘 밤 나 차 지붕 올라가서 별 궤적 찍을 거야. 세 시간, 인터벌 30초, 한 장도 끊기면 안 돼.” 손을 뻗어 그녀의 손을 찾았다. 손가락이 아주 차가웠다. “나 안 내려와. 그냥 차 지붕에 있을 거야. 여기서 10미터.”
“그래서?”
“지퍼는 네가 정해.” 내가 말했다. “네가 끝까지 올리면, 난 10시 반까지 찍고 돌아와. 아무 일도 없었던 거야. 네가 반만 내리면, 난 계속 찍는 거야.”
그녀는 한참 소리가 없다가 한 번 웃었다. 자기를 놀릴 때 나오는 그 웃음. “당신 지금 마누라를 타임랩스 소재 취급하는 거네. 30초에 한 장, 다 찍으면 배경음악까지 깔아줄 거야?”
“안 들어가.” 내가 말했다. “듣기만 해.” “차 지붕이 얼마나 높은데, 뭐가 들려.” “이 캠핑장에선 그 남자 돌 두드리는 소리까지 들려.”
그녀가 또 말이 없었다. 나는 오래 기다렸다. 옆집 가스스토브가 꺼지고 벌레 소리가 확 도드라질 때까지 기다리고 나서야 그녀의 말이 들렸다. “중간에 차 지붕에서 내려오면, 당신이 아무 말도 안 한 걸로 칠 거야.” “지붕에서 내려오면 소리 나. 너도 들려.”
침낭을 열었다. 지퍼가 정적 속에서 무섭게 울렸다. 나갈 때 문 지퍼를 끝까지 올렸다. 형광 로프가 눈앞에서 한 번 흔들렸고, 나는 건드리지 않았다.
【징란·아내】
루프랙이 삐걱 두 번 울리고, 그가 기어 올라가는 소리, 신발 밑창이 쇠를 긁는 소리, 그다음 카메라 셔터, 찰칵, 아주 가볍게. 30초, 또 찰칵.
나는 침낭 속에서 셌다. 스무 번째 찰칵을 셀 때, 내 평생 가장 황당한 결정이 곧 매트 냄새 나는 텐트 안에서 내려지겠구나 싶었다. 웨딩 사진도 스튜디오에서 찍은 사람이, 이런 일엔 장소를 따지기 시작한다.
옆 사이트는 기척이 없다. 벌레가 울고, 바람이 텐트 밑으로 파고들어 텐트 천이 부풀었다 꺼졌다 한다. 누가 밖에서 살살 두드리는 것처럼.
나는 일어나 앉았다. 텐트 문의 그 형광 로프가 바로 눈앞에 있다. 빛날 만큼 초록이다. 우리 집 그이가 묶은 거. 아주 단단히, 이중 매듭으로.
손을 뻗어 지퍼 손잡이를 집었다.
손이 떨렸다. 나한테 말했다. 징란, 너 서른이야, 라테 파는 여자가 해발 3200미터에서 자기 집 텐트 문에 틈 하나 내는 거야, 별일 아니야, 기껏해야 감기 들고, 기껏해야 내일 산 내려가서 감기약 한 통 더 사는 거야.
지퍼를 위에서 아래로 당겼다. 이빨이 하나씩 벌어졌다. 소리가 텐트 안에서 크게 증폭돼서 바깥 벌레를 다 합친 것보다 울렸다. 반까지 내리고 멈췄다. 형광 로프가 늘어져 틈새에서 흔들렸다.
차 지붕에서, 찰칵.
옆 사이트의 지퍼가, 한 번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