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샤오루·아내】
비는 오후 두 시 십 분에 시작됐다. 기억한다. 그때 나는 훙진의 콧대에 하이라이터를 넣고 있었는데, 브러시가 피부에 닿자마자 기루 바깥에서 “쏴아” 하고, 누가 이 층에서 대야째 물을 쏟아붓는 것 같은 소리가 났으니까.
바이루완 야외 촬영 기지는 시내에서 사십 킬로미터. 민국풍 거리, 유럽식 교회, 유리 온실, 세 가지가 전부 한 산골짜기 안에 모여 있다. 기지의 라오허가 뛰어왔다. 바짓단이 무릎까지 젖어 있었다. “성도가 연석 위까지 잠겼어. 오늘은 못 나가. 객실은 잡아 뒀어, 이 층, 이공삼.” “그럼 내일은요?” 내가 물었다. “하늘 봐야지.” 라오허는 그 말만 하고 모래주머니를 옮기러 갔다.
나는 스물일곱, 시내에서 웨딩 스튜디오를 연 지 사 년. 인둬는 내 남편, 서른, 스튜디오의 유일한 사진사. 이번에는 기지와 샘플 사진을 교환하러 왔다. 저쪽은 우리한테 장소 사용료를 면제해 주고, 우리는 한 세트 찍어서 저쪽 홍보 팸플릿에 걸어 준다. 모델은 기지 쪽에서. 여자 모델 차가 읍내에서 발이 묶여 못 들어왔다. 남자 모델은 기지에 상주하는 사람이었다. 훙진, 서른셋, 장마철엔 늘 여기 머물면서 샘플 찍으러 오는 사진사들한테 신랑 역을 전문으로 해 준다.
그 사람이 지금 내 앞 접이식 의자에 앉아 있다. 기지 의상실의 흰 양복을 입고, 턱을 들고, 내가 파우더를 두드리게 두면서.
“피 선생님, 손 진짜 차네요.” 그가 말했다. “에어컨이 너무 세서요.” “아니, 손이 찬 거예요. 내 전 여친보다 차.” “그분 손은 몇 도였는데요?” 묻고 나서야 이 말이 이상하다는 걸 알았지만, 그는 이미 웃고 있었고, 웃는 바람에 팔자주름 자리의 파운데이션이 한 줄 갈라졌다.
“웃지 마세요.” 기름종이를 눌러 댔다. “습도가 너무 높아서, 웃으면 무너져요.” “피 선생님은 신랑을 몇 명이나 두드려 봤어요?” “안 세 봤어요. 사 년, 일 년에 백 몇 건쯤.” “얼굴 기억나는 사람은 몇이나 돼요?” “다요.” 내가 말했다. “얼굴은 기억하는데 사람은 기억 안 해요.” 그가 또 웃었고, 나는 또 한 번 눌러야 했다.
【인둬·남편】
나는 기루 아래서 렌즈를 갈고 있었다. 85밀리 단렌즈. 비 오는 날 빛은 부드러워서, 사람 얼굴 찍기엔 딱이다.
뷰파인더 안에서 샤오루가 허리를 굽혀 훙진한테 기름종이를 누르고 있다. 오늘 그녀는 검은 워크팬츠에 흰 티셔츠, 머리는 올려 묶었고, 목덜미에 묶이지 못한 잔머리 한 가닥. 훙진은 앉은 채로, 거울을 안 보고 있다. 그녀를 보고 있다. 한 장 눌렀다. 그녀는 모른다.
사 년 전에도 나는 이렇게 그녀를 찍었다. 그날 나는 동업자 스튜디오에 일손 도우러 갔고, 그녀는 신부 메이크업 담당이었고, 신부 드레스 자락 옆에 쪼그려 앉아 립스틱을 고치고 있었다. 나는 렌즈를 신부한테서 떼서 그녀한테 맞췄다. 열한 장 찍었다. 나중에 우리는 결혼했다. 그 열한 장을 그녀는 한 장도 못 봤다. 나는 뷰파인더 안에서 그녀를 보는 게 좋다. 뷰파인더 안의 사람은 눈앞의 사람보다 가깝다. 이 말은 누구한테도 한 적 없다.
“여자 모델이 안 오면, 이 세트는 어떻게 찍어요?” 훙진이 물었다. “너 혼자 찍는다.” 내가 말했다. “신랑이 신부를 기다린다. 기다려도 안 온다.” “그럼 신부 손은요? 손 하나는 내 어깨에 얹혀 있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나는 카메라를 내리고 샤오루를 한 번 봤다.
“샤오루, 의상실에 흰 새틴 드레스 있어. 가서 갈아입어.” “내가?” “손만 찍어. 등하고. 얼굴은 안 찍어.” “난 찍혀 본 적 없는데.” “할 줄 몰라도 돼. 서 있기만 하면 돼.”
그녀는 거기 서서 삼 초 생각했다. 생각할 때 그녀의 입은 살짝 벌어진다. 누가 답을 넣어 주길 기다리는 것처럼. “그럼 내 박스는?” 그녀가 물었다. “들고 와.”
【훙진·단남】
그녀가 갈아입고 나왔을 때, 비는 더 거세져 있었다.
의상실의 그 새틴 드레스는 그녀한테 두 사이즈 컸고, 뒤허리를 자기가 시침핀으로 한 줄 꽂아 놨는데, 핀 자리가 비뚤었다. 가슴께 천이 한 뼘쯤 비었고, 걸을 때 새틴이 허벅지에 달라붙어 한 걸음에 물결 하나. 나는 이 기지에서 샘플 신랑을 삼 년 했는데, 사진사 아내가 웨딩드레스를 입고 내 옆에 선 건 처음이었다.
“피 선생님, 손 내 어깨에 올려요.” 내가 말했다. “인둬가 어디 올리라곤 안 했는데요.” “손 찍는다잖아요. 손은 놓을 데가 있어야죠.” 그녀는 잠깐 생각하더니 손을 올렸다. 아주 가볍게. 양복에 주름이 질까 봐 겁내듯이.
인둬는 기루 저쪽 끝에서 쪼그려 앉아 렌즈를 우리 쪽으로 향하고 있다. 아무 말 없이, 셔터 소리만. 찰칵, 찰칵, 찰칵. 급하지도 느리지도 않게, 누가 숫자를 세는 것처럼.
“훙진, 손으로 허리 감아.” 그가 말했다.
감았다. 새틴은 얇고, 그녀 허리는 가늘고, 내 손가락은 딱 그녀 갈비뼈 두 개 아래에 걸렸다. 그녀 허리는 뜨겁다. 내 손보다 뜨겁다. 내 손바닥에서 땀이 나서, 얼마 안 가 그 자리 새틴이 조그맣게 젖었다.
“감으라고 하면, 그냥 감아요?” 그녀가 작게 말했다. “사진사잖아요.” “그건 그렇네요.” 말하고 나서 그녀는 고개까지 끄덕였다. 그 말에 정말로 설득된 것처럼.
“샤오루, 카메라 보지 마. 비를 봐.” 인둬가 외쳤다. 그녀가 얼굴을 돌려 비를 봤다. 그 옆얼굴이 내 턱에서 십 센티도 안 됐다. 귀 뒤에 아주 작은 점이 하나 보였고, 채 닦이지 않은 물방울 하나가 헤어라인에서 귀뿌리까지 미끄러져 내려와 거기 멈췄다.
찰칵. 찰칵. 찰칵찰칵찰칵.
“훙진, 손 조금 더 아래.” 그가 말했다.
내렸다. 그녀 엉덩이 바로 위의 허리 보조개, 딱 엄지 하나. 그녀가 한 번 움찔했다. 피하진 않았다. “엄지로 누르고 있어요.” 그녀가 말했다. “인 선생님이 내리라고 해서요.” “아.” 그녀는 다시 비를 보러 갔다.
【피샤오루·아내】
사십 분을 찍었고, 비는 안 그쳤다. 인둬가 빛이 바뀌었다며 쉬자고 했다.
나는 메이크업 박스를 열어 기루의 돌 탁자에 놓고, 퍼프로 훙진 이마를 손봤다. 땀을 심하게 흘려서 헤어라인에 파운데이션이 한 줄 엉겨 있었다. 물티슈로 닦아 내고 다시 발랐다.
“피 선생님, 아까 허리 그거, 피했어요?” 의자에 앉아 얼굴을 쳐들고, 눈을 감은 채 그가 물었다. “어느 거요?” “내가 손 내린 거.” “안 피했는데요. 인둬가 내리라고 했잖아요.” “난 선생님이 피했냐고 묻는 건데.”
나는 잠깐 멈췄다. 퍼프가 그의 눈썹뼈 위에 떠 있었다.
“박스가 열려 있을 땐 저 메이크업 아티스트예요.” 내가 말했다. “그런 얘기 하지 마세요.” “그럼 닫으면요?” “닫으면 퇴근이죠.”
그가 눈을 뜨고 나를 봤다. 말하고 나서야 이 말이 어딘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어디가 이상한지는 나도 말할 수 없어서, 그냥 퍼프를 눌러 버렸다.
인둬는 기루 기둥 옆에서 렌즈를 닦고 있었다. 고개를 들지 않았다. 들었는지 안 들었는지 모르겠다.
【인둬·남편】
들었다.
“닫으면 퇴근이죠”도 들었고, 그녀가 박스 잠금쇠를 눌러 넣는 소리도 들었다. 딸깍. 셔터 소리보다 무거웠다.
밤에 우리는 이공삼에 묵었다. 훙진은 옆방 이공이, 사이에 벽 하나. 기지 객실 창은 온실을 향해 있고, 비가 유리 지붕을 때리는 소리가 한 판 한 판 울린다. 누가 옥상에서 콩을 쏟아붓는 것처럼.
샤오루가 샤워를 마치고 나와서, 젖은 머리로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닦고 있다. 나는 오늘 찍은 걸 컴퓨터에 넣고 한 장씩 넘겼다. “쓸 만한 거 있어?” 그녀가 물었다. “있어.” 화면을 그녀 쪽으로 돌렸다.
뒷모습 한 장. 흰 새틴, 뒤허리에 비뚤게 꽂힌 시침핀 한 줄, 남자 손 하나가 허리 보조개에 얹혀 있고, 엄지가 조금 파묻혀 있다.
“이게 나야?” “너야.” “허리가 좀 굵은 것 같은데.” “안 굵어.” “이 사람 손 되게 크다.” “응.”
그녀는 오래 봤다. 뭘 볼 때 그녀는 눈을 깜빡이지 않는다. 세어 본 적 있다. 제일 길게는 이십 초.
“오늘 걔가 허리 감았을 때, 무슨 느낌이었어?” 내가 물었다. “뜨거웠어.” 그녀가 말했다. “손바닥에 땀이 나서, 새틴이 한 군데 젖어서, 달라붙었어.” “넌 젖었어?” “뭐?” “너, 젖었냐고.”
그녀는 잠깐 멍하니 있다가 자기 몸을 내려다보고, 다시 나를 봤다. “신경 안 썼는데.”
나는 그녀를 침대에 눕히고 목욕 수건 밑으로 손을 넣었다. 그녀 다리 사이가 말도 안 되게 미끄러웠다. 손가락 두 개가 들어가는데 저항이 하나도 없었다. 그녀가 “아” 하고, 자기도 놀랐다.
“젖었어.” 내가 말했다. “나…… 나 진짜 몰랐어.” 눈을 크게 뜨고 있다. “샤워하고 덜 닦여서 그런 거 아냐?” “아니야.” “그럼 뭔데?”
나는 답하지 않았다. 안에서 손가락을 구부리자 그녀 허리가 활처럼 휘고, 목욕 수건이 풀리고, 두 젖가슴이 하얗게 빛났다. 젖꼭지는 연분홍이고, 딱딱하게 서 있다.
“아둬.” 그녀가 헐떡였다. “오늘 그 사람 찍을 때, 나는 몇 장 찍었어?” “육십삼 장.” “몰랐어.” “난 알아.”
【피샤오루·아내】
그는 안 넣었다. 손가락만. 나는 갔다. 빨랐다. 너무 빨라서 나도 무슨 일인지 몰랐고, 다리로 그의 손을 조이고 나서야 방금 그게 뭐였는지 알았다. “이건 뭐야?” 누운 채 그에게 물었다. “예행연습.” “무슨 예행연습?”
그는 답하지 않았다. 내 다리 사이에서 손가락을 빼서 내 배에 쓱 닦고, 일어나 불을 끄러 갔다.
어두워지고 나서, 옆방 샤워 소리가 벽을 통해 스며 나왔다. 쏴아 하고, 바깥 빗소리와 섞여서 어느 게 어느 건지 모르겠다. 내일 비가 그치냐고 묻고 싶었는데, 그도 모를 것 같았다.
“내일 온실 세트는,” 인둬가 어둠 속에서 말했다. “박스 닫고 찍어.” “닫으면 그 사람 메이크업 수정은 어떻게 해?” “안 해.” “그럼 난 뭐 해?”
그가 몸을 돌려 손을 내 허리 보조개에 얹고, 엄지를 눌러 넣었다. 그 사진하고 같은 자리.
“퇴근.” 그가 말했다.